[단독]"연구장비 살게" 600억 빌리고 연체한 교수들…이 회사 주주였다

머니투데이 황예림 기자, 강주헌 기자 2024.08.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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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전문 4개사, 할부·리스 600억원대 부실 발생
대출금은 '상폐 진행' 셀젠텍으로

셀젠텍 연구장비 관련 할부리스 규모/그래픽=김다나셀젠텍 연구장비 관련 할부리스 규모/그래픽=김다나


하나캐피탈, 우리금융캐피탈, KG캐피탈, 우리카드 등 여신전문회사에서 600억원대 규모의 할부·리스 부실이 발생했다. 10여명의 대학교수가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산다는 명목으로 인당 30억원 넘게 대출을 일으켰다. 대학교수가 개인 돈으로 수십억원어치 연구장비를 사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음에도 금융사는 부실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캐피탈, 우리금융캐피탈, KG캐피탈, 우리카드 등 4개사가 내준 600억원대 규모의 할부·리스에서 부실이 발생했다. 4개사 중 하나캐피탈이 400여억원으로 가장 많은 대출을 내줬고 △우리금융캐피탈 80여억원 △KG캐피탈 80여억원 △우리카드 40여억원 등이다.



4개사는 전국 주요 대학의 약학대 교수 약 15명에게 할부·리스를 시행했다. 대출규모는 인당 30억원이 넘는다. 이들은 대학에 연구장비를 공급하는 셀젠텍이 판매하는 고가의 연구장비를 구매하는데 대출을 활용했다. 셀젠텍 주주이기도 한 이들은 대출받을 당시 금융사에 "국가 프로젝트를 수주했는데 연구비가 한번에 나오지 않아 할부·리스를 받아 먼저 연구장비를 사려 한다. 연구비가 나오면 대출을 갚아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개월 전부터 대출이 연체됐다. 금융사는 "정부가 연구비를 줄여서 일시적으로 상환이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차주들의 해명을 믿고 이자유예·만기연장 등의 조치를 취했다. 금융사들이 실태 파악에 나선 건 물품대금이 들어간 셀젠텍이 대표이사 횡령을 공시한 뒤였다. 코넥스 상장사인 셀젠텍은 지난달초 당시 각자대표이사 중 한명이 240여억원을 횡령했다고 공시했고 현재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중이다.



차주 모두 신분이 확실한 직업인데다 자신의 명의로 직접 대출을 실행했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원금 상환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당 대출액이 수십억원 규모로 커서다. 차주 일부는 상환 부담으로 금융사에 대출을 갚지 못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할부·리스는 금융사가 판매사에 물품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차주에게 분할상환을 받는 개념의 대출이기 때문에 600여억원은 이미 셀젠텍으로 흘러들어갔다.

금융사가 대출심사를 소홀히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사의 내구재 할부·리스 취급 품목은 스크린골프·자판기·마사지기 등으로 다양하지만 연구장비처럼 범용성이 적은 물품을 취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연구장비를 취급하더라도 차주는 개인이 아니라 보통 대학이나 병원 등 법인이다. 교수 개인이 연구를 위해 수십억원어치 연구장비를 사들이고 국가로부터 돈을 받아 대출을 메우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하나캐피탈 관계자는 "대규모 연체가 발생했기 때문에 회수작업과 동시에 법적 조치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며 "상환 의지를 표명한 차주는 이자유예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지만 갚을 여력이 안된다고 한 차주를 대상으로는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대규모 부실을 인지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금감원 관계자는 "관련 회사들이 자체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교수들이 직접 대출을 실행했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만큼 불법대출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사항은 자체감사 내용을 받아보고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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