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급 많이 줘"…교사까지 관둔 '필리핀 가사관리사' 한국 땅 밟는다

머니투데이 마닐라(필리핀)=조규희 기자 2024.08.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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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100만 외국인력 시대, 우리 옆 다른 우리-③(上)

편집자주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외국인 취업비자 소지자는 92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은 현재 합계출산율 0.7명대의 인구절벽에 처해있고 2025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보여 외국 노동인력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받아들여야할 '현상'이 됐다. 100만 외국노동시대를 앞둔 우리 사회가 '우리 옆 다른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올바른 다문화 시대 조성을 위한 고민을 풀어본다.

대학강사·교사→가사관리사…큰돈 들여 한국 오는 이유 들어보니[르포]
① 100명의 필리핀 돌봄전문가

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 전경. /사진=조규희 기자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 전경. /사진=조규희 기자


저출산·고령화 시대, 작은 돌파구로 기대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한국 입국 준비는 끝났다. 오는 6일 한국에 첫발을 내딛는 그들을 지난달 19일 현지에서 만나봤다.



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100명의 교육생 중 대다수는 4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을 지녔다. 한국어는 서툴렀지만 평상시 대화도 영어로 하는 필리핀인만큼 영어는 유창했다.

780시간 이상의 교육과 부대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국행을 택한 그들은 각자의 목표와 꿈이 있었다. 가족 부양이 한국행의 중요한 이유였지만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지원한 이도 있었다.



케어기버(Caregiver)-NC2 자격을 갖춘 이들은 △기본역량 18시간 △일반역량 18시간 △핵심역량 700시간 등 736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핵심역량 교육에는 영유아·아동을 포함해 노인에 대한 돌봄과 지원 교육이 포함된다. 응급상황 대처와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유지하는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이 끝나면 병원과 기관에서 수습 과정을 밟아야 한다. 총 780시간이 넘는다.

우리나라 간호조무사 수준의 전문 교육을 받는데 해당 케어기버가 되기 위한 선발 조건도 까다롭다. △최소 10년의 기본교육을 이수했거나 10학년과 동등한 대안 학습 시스템 수료증 이수자 △구두와 서면 모두 의사소통 가능한 자 △간병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신체적 및 정신적 능력 보유자 등의 조건을 갖춰야 교육 신청이 가능하다.


4년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영어교사로 일했던 35세 미쉘은 케어기버 자격증 교육비로만 2만 페소가 넘는 돈이 필요했다. 한화로 47만원 가량이지만 현지에서는 매우 큰 액수다. 교육을 받기 위해 통상 2-5시간을 이동하고 때로는 숙박도 해야 한다. 이런 부대비용은 평균 6만페소(약 141만원) 정도다.

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에서 진행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교육 현장. /사진=조규희 기자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에서 진행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교육 현장. /사진=조규희 기자
11살짜리 아이를 포함, 9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미쉘은 "한국에서의 월급이 많아서 좋다. 최소 한달에 3만페소(약70만원)를 필리핀 가족에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37세 리즈는 전업주부다. 남편과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그녀는 가족들 삶의 질적 변화와 아이를 위해 케어기버 자격증을 취득했다. 버는 돈의 절반은 집으로 송금할 계획의 리즈는 "가족이 교육과 한국으로 가는 비용을 모두 대줬는데 빨리 돈을 벌고 싶다"며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필리핀으로 보내 아이를 위해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전문직이 되면 나 혼자의 생활이 가능하지만 케어기버가 되면 가족 부양이 가능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한 28세 조안은 대학에서 역사와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온라인을 통한 영어 강사도 했다. 조안은 대학 강사의 한 달 벌이가 3만페소(약 70만원), 온라인 강사가 4만5000페소(약 105만원)정도라고 기억했다.

조안에게 케어기버는 미래 경쟁력이자 워라밸을 보장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는 "온라인 영어 강의는 12시간 일하면서 항상 긴장하고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하지만 한국의 케어기버는 8시간만 일하면 된다"며 "최소 2만페소정도 가족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저축해서 나중에 대학에서 역사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 입국하는 필리핀가사관리사 리즈(37)는 4년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남편과 아이를 부양하고자 한국행을 택했다. /사진=조규희 기자한국에 입국하는 필리핀가사관리사 리즈(37)는 4년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남편과 아이를 부양하고자 한국행을 택했다. /사진=조규희 기자
한국에 입국하는 100여명의 케어기버들은 모두 각자의 꿈과 목표로 부풀어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부분도 있다. 언어와 대우다.

"가장 걱정되는 건 사모님과 사장님이 나쁘지 않은지, 욕이나 나쁜 말을 하거나 때리지 않을지 걱정이다", "사장님이 영어를 못하는 게 걱정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려면 영어가 돼야 한다", "사장님과 사모님의 인성이 좋다면 그 가정에서 일할 수 있고 시범 사업이 끝나고도 계속 일하고 싶다"

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산업인력공단 필리핀 EPS센터는 특별 교육을 준비했다. 아우레아 자비에르 아테네오대학교 한국학 학과장은 '한국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하지 말아야할 행동'에 대한 교육을 맡았다. EPS센터는 이외에도 실생활에서 쓰는 한국어와 재활용 하는 법 등을 케어기버에게 가르쳤다.



안현민 필리핀 EPS센터장은 "시범사업 선발자에게 한국어 집중교육을 실시해 기초적 언어 생활을 습득하게 하고 입국 후 직무교육과 안정적 가정 내 근로 개시를 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하는게 주 목적"이라며 "케어기버가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동시에 필리핀에도 기여하는 등 양국에게 윈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독 인터뷰]필리핀 정부 "원스트라이크 아웃…우린 돌봄 전문가 보내는 것"
② 필리핀 이주노동부 송출국장 인터뷰

필리핀 이주노동부 송축국 공무원. /사진=조규희 기자필리핀 이주노동부 송축국 공무원. /사진=조규희 기자
필리핀 정부는 한국에 보내는 가사관리사의 역할을 '아이 돌봄'에 한정했다. 아이를 돌보며 집안을 청소하고 가족의 옷을 빨고 때로는 음식까지 준비하는 등 국내서 기대하는 모습과 차이가 있다.



특히 필리핀 정부는 '원 스트라이크' 정책을 통해 가사관리사가 차별 또는 잘못된 대우를 받을 경우, 일을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고용허가제(EPS)로 송출하는 직종에 가사관리사라는 '서비스업'이 추가돼 환영한다는 입장이나 6개월의 시범사업 기간 이후에 가사관리사의 처우와 생활환경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송출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지난달 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에티 로즈마리 이주노동부 송출국장과의 문답.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100명의 가사관리사 송출하게 됐는데.
▶2003년부터 한국과 필리핀간 EPS가 체결돼 있다. 제조업에 이어 이제 서비스업까지 확대됐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한국 정부와의 협상 과정은.
▶지난해 마지막 분기에 협상을 시작했다. 한국 정부와 필리핀 정부 간에는 여러 차례 협상이 있었고 마침내 실행 지침을 마련하게 됐다.

-필리핀 정부가 협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실행 지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업무 영역이다. 우리가 파견하는 인력이 돌봄도우미(Caregiver·케어기버)인데 가사도우미(Domestic helper·도메스틱헬퍼)로 잘못 이해되기 때문이다.

-케어기버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과의 협약사항으로 실행지침 제 2조에 명시돼 있다. 돌봄도우미는 유아를 포함한 아동과 임산부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옷 입히기, 목욕시키기, 청소, 화장실 이용, 식사준비, 먹여주기, 청소 등 아동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가사 업무가 포함된다. 이외에도 돌봄 도우미는 '돌봄'이라는 명목하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즉 돌봄과 관련된 가사 업무를 할 수 있다.



-국내서는 집안일을 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원하는데.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자격을 갖춘 유능한 돌봄 도우미를 송출할 예정이다. 가사도우미를 보내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싶다. 우리가 한국으로 보내는 사람은 케어기버 NC2 자격을 갖춘 돌봄 도우미다.

에티 로즈마리 필리핀 이주노동부 송출국장이 19일 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조규희 기자 에티 로즈마리 필리핀 이주노동부 송출국장이 19일 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조규희 기자
-양국간 케어기버에 대한 합의된 처우는.
▶임금은 시간당 9860원인 한국의 최저임금을 받는다. 아울러 주 최소 30시간의 근무시간을 보장한다. 근로계약서는 필리핀 법률에 따라 검토를 완료했다.

-추가로 강조하고 싶은 합의 사항이 있다면.
▶원 스트라이크 정책이다. 만약에 잘못된 대우를 받거나 성추행, 성폭행 관련한 일들이 일어날 경우에 한국 정부도, 해당 업체도 원 스트라이크 정책을 펼칠 것이다. 관련 조치를 취하고 사용자에게 페널티를 부과해 더이상 케어기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지원자와 경쟁률이 예상했던 것보다 낮았다고 들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언어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나라로 가는 케어기버는 언어의 조건이 없는데 한국은 한국어 가능자를 원했다. 아울러 시험도 거쳐야 했다. 또 다른 송출국보다 적은 임금이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일본의 경우 기준이 한국보다 조금 더 높다. 간호학과를 나와야 하고 간호학 관련된 자격증이 있어야 된다. 일본에서는 케어기버를 병원과 요양원에서 전문인력으로 활용한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10학년 정도만 졸업해도 이 케어기버 NC2 자격증만 있으면 지원 가능한 조건이 된다.

-시범사업인데 계속 진행할 의향이 있나.
▶다른 송출국과 비교해을 때 한국의 경우 복지 관련 민원이 거의 없어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거리상 가까워 왕래하기도 좋다. 필리핀인이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성공하길 바란다. 다만 6개월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케어기버의 반응이나 여러 사안을 확인해야 한다. 재검토는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이 월급 많이 줘"…교사까지 관둔 '필리핀 가사관리사' 한국 땅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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