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왜 1심 법원 역할을? 법관들은 오히려 '부담백배'

머니투데이 정진솔 기자 2024.07.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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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법정 블루스]법정에는 애환이 있습니다. 삶의 고비, 혹은 시작에 선 이들의 '찐한'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김현주 공정거래위원회 송무담당관이 지난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상반기 공정위 소송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현주 공정거래위원회 송무담당관이 지난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상반기 공정위 소송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행정기관이지만 사실상 법원 기능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은 지방법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서울고법이 맡는다. 일반적인 민형사 재판은 고법이 항소심 재판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정위 심결을 사실상 1심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최종 판단을 내리는 대법원까지 쳐도 법원의 판단은 두차례에 그친다.

공정위는 조사기관과 1차 심판기관 역할까지 수행한다. 검찰로 치면 검찰이 조사해 직접 1심 판결까지 내린 뒤 법원이 2심과 3심을 맡는 식이다. 1998년 행정소송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행정기관의 처분에 대해 불복해 제기하는 다른 행정소송은 법원에서 '행정법원-고법-대법원'을 거치는 3심제로 바뀌었지만 공정위 사건은 여전히 공정위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인정해 '고법-대법원'만 거치는 2심 제도가 적용된다. 현재 2심제로 운영되는 재판은 공정위 처분 불복 소송 외에 외에 특허심판원 심결 취소소송,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재결 취소소송, 일부 지방자치단체 선거소송 등이 있다.



기업에서는 재판받은 권리가 제한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4대 그룹 한 대관 담당자는 "공정위 조사·처분 과정에서는 추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공정위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공정위 처분 과정을 사실상 1심으로 보는 현행 제도에서는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만은 기업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법원에서도 공정거래 사건 특성상 사회·경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안을 '고법-대법원'의 2심으로 끝내야 하는 데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판사는 "대법원은 잘못 적용된 법리가 있는지만 따지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따져 판단하는 절차가 사실상 한번 뿐이라는 부담을 고법이 진다"고 말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다른 행정소송은 1심부터 겪고 온다"며 "공정위 건의 경우 고법 판사들은 1심 판결문을 인용하고 추가 판단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건을 봐야 한다"고 봤다.

공정위 처분을 뒤집어야 하는 경우엔 법원의 부담이 더 커진다. 공정위 제재가 취소될 경우 그 비용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소될 경우 공정위는 납부한 과징금뿐 아니라 이자(환급가산금)까지 국고에서 나가야 한다. 지난해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2017~2023년 행정소송 패소로 기업에 되돌려준 환급액은 5511억원으로 집계됐다. 환급 가산금은 444억원에 달했다.

지난 6월에도 SPC에 부과됐던 600억원대 과징금 처분이 법원 판결을 거쳐 최종 취소됐다. 공정위가 이른바 '통행세 거래'로 불리는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를 근거로 SPC에 부과한 과징금 647억원에 대해 서울고법에 이어 대법원이 지난 6월 전액 취소 판결을 내렸다.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 의혹으로 공정위가 쿠팡에 부과했던 32억원대의 과징금도 서울고법 판결에서 취소된 상태다.


법조계 한 인사는 "행정부의 처분과 민간기업의 주장이 마주치는 상황에서 사건의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따져 때론 민간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것 자체는 사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다른 행정소송과 달리 공정위 처분 불복 사건은 심리 절차가 2심에 그친다는 점에서 법관 개인이, 특히 공정위 처분을 뒤집어야 할 경우 부담은 상당하다"고 말했다.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2심제를 채택했던 일본은 2013년 말 법을 개정해 공정취 처분 불복 소송의 관할을 기존 도쿄고등재판소에서 1심 법원인 도쿄지방재판소로 변경했다. 우리 국회에서도 지난 17대 국회부터 같은 취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김정환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행정처분의 권위를 인정해 2심제로 운영하던 걸 3심으로 바꾼 게 30여년이 돼가는 상황에서 특별히 공정위 관련 소송만 2심제로 운영하는 건 다른 행정처분과 비교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제도의 목적의 차이를 살펴 사안을 좀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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