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 설치된 '수방용 모래마대 보관함'에 모래주머니 대신 플라스틱 음료수병, 테이크아웃 잔 등 쓰레기가 가득했다./사진=김미루 기자
모래주머니는 쓰레기 아래 파묻혀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모래주머니는 폭우 시 차수판을 설치할 때 바닥과 틈새를 막는 비닐류를 고정하는 데 사용하거나 하수 역류를 막기 위해 쓴다.
4년전 침수 피해가 극심했던 강남역 일대의 수방용 시설이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일대 상인들은 "올해는 대비가 잘 됐을 것"이라고 관리 당국에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수방용 모래마대 보관함'에 모래주머니가 용량의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서울 전역에 호우특보가 내린 2020년 8월1일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 하수도가 넘치면서 흙탕물이 인도를 뒤덮었다. /사진=뉴스1
강남역 9번 출구 쪽 지하상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생생하게 침수 피해를 기억했다. A씨는 "계단에서 빗물이 내려오더니 가게 안까지 들어오면서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첨벙첨벙' 소리가 났다"며 "대비가 잘 됐는지 지난해와 올해는 별다른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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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상가 내부에는 의류, 화장품을 취급하는 소규모 점포 200여개가 있다. 상가에 위치한 옷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는 30대 B씨는 "우리 점포는 물길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서 전에도 옷이 젖거나 하는 피해는 없었다"면서도 "상가 내부에서도 출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점포들은 라인 전체가 침수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가 계속 많이 안 오기를 바란다"며 "직접 침수 피해를 막을 방법이 따로 있겠나"라고 말했다.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1번 출구 앞. /사진=김미루 기자
23일 서울 서초구 진흥종합상가. 2년 전 침수 피해 이후 빗물에 완전히 잠겼던 상가 지하 1층은 아예 임대를 하지 않는다. /사진=김미루 기자
10년째 해당 상가 1층에서 옷 수선집을 운영한 70대 C씨는 "2020년과 2022년 장마철에는 우리 점포가 1층인데도 캐비닛이 다 잠길 만큼 빗물이 차올랐다"며 "지하상가는 전부 운영을 안 하고 침수 피해 이후에 상가에서 차수판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번 집중 호우 기간 서울 강남권에서 상대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 지난 16일부터 3일간 서울 내 누적강수량은 서초구가 147.0㎜로 가장 적었다. 이어 △송파 152.5㎜ △관악 153.5㎜ △강남 154.0㎜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서울 동북권에서 △노원 288.0㎜ △동대문 265.5㎜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안심하기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장마 백서에 따르면 1991∼2020년 중부지방 평균 1차 우기, 즉 장마 종료일은 7월26일이다. 평년대로라면 3일 후쯤이 장마 종료 시점이다. 다만 '가을장마'로 불리는 2차 우기는 장마철이 끝나고 폭염이 찾아온 뒤 태풍과 함께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기상청은 이날 "태풍 발생으로 장마 종료 시점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