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리튬 안보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4.05.08 15:43
글자크기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에서 미국 애틀랜타까지 비행거리는 1만1441㎞다. 거의 14시간 비행이다. 고역이다. 그런데 뉴욕에서 호주 시드니까지는 더 먼 1만6105㎞다. 비행시간이 거의 21시간이라고 나온다. 하루를 꼬박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한다.

거리가 이렇게 먼데 미국과 호주는 매우 가까운 사이다. 일단 할리우드에 호주 출신 배우가 많다. '토르' 크리스 헴스워스,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 휴 잭맨, 그리고 마고 로비와 '글라디에이터' 러셀 크로가 있다. 이 스타들은 LA와 시드니를 자주 왕래할 것 같은데 15시간이 넘게 걸린다.



할리우드에 호주 출신 스타가 많은 이유를 검색해 보니 가장 먼저, 호주에서 연기 트레이닝을 잘 받는다고 나온다. 다음으로는 영어다. 영국 영어를 쓰지 않고 미국식 영어를 쓰는데 오리지널 미국 영어보다 어딘지 부드럽고 거부감이 덜하다고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필자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런 모양이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인 배우들보다 품성이 좋다"고 나온다.

호주의 미국대사관과 영사관 홈페이지에는 호주가 1차 대전 때의 하멜전투에서부터 미국과 나란히 싸웠다고 돼 있다. 호주는 미국과 태평양전쟁의 미드웨이해전에서도 같이 싸우는 등 혈맹이다. 미국은 특히 호주가 동아시아의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2007년부터 미국, 일본, 인도, 호주 간 4자 안보협의(쿼드)를 운영한다. 쿼드는 유럽의 나토와 같은 군사협력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호주가 가까운 사이인 이유는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즘 와서는 특히 리튬 때문이기도 하다. 호주는 미국, 중국, 칠레와 같이 리튬이 많이 매장돼 있고 생산하는 나라다. 리튬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리튬이온 배터리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EV)에 필요하다. 리튬은 특히 EV 공급망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고 EV 가치의 30~40%를 차지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거둬들이고 있는 미국이 천연자원의 보고인 호주를 예외 취급하는 이유 중 하나다.

리튬은 남반구에서 주로 채굴된다. 남미의 여러 나라다. 그런데 남미는 특히 광산업에서 식민지 시대부터 내려오는 인권문제가 심각한 곳이다. 작업환경과 처우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 문제는 ESG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미국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해외 사업장이나 원료공급처의 인권상황이 거래관계에 큰 변수가 되고 자본시장에서는 그에 관한 공시의무가 있다. 호주는 그 문제도 덜하다.

지구상의 모든 자동차를 EV로 전환하려면 지금의 2배 전기생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제약조건이 있다. 친환경이어야 한다. 지구상에 더 이상 건설할 곳이 없는 수력발전을 빼고 화력과 원자력을 제외하면 태양광과 풍력만 남는다. 그런데 태양광과 풍력에는 큰 제약이 따른다.


가장 큰 제약은 지구상에서 가장 변덕이 심한 '날씨'다. 공급예측이 어렵다. 또 전기는 밤에 더 많이 소비된다. 태양광은 밤에는 올스톱이다. 전력은 수요에 맞춰서 생산량을 조절해야 하는데(신속처리 역량이라고 부른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지구상의 인구 절반 이상이 대도시에 산다는 사실이다. 전기는 생산지와 소비지 간에 원거리 '전달' 문제라는 약점이 있는 에너지다. 석유와 가스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지만 전기는 배로 운반할 수 없다. 100%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한다. 파이프라인이라면 질색을 하는 환경단체들이 대규모 송전설비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친환경 발전의 그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마술이 바로 배터리다.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배터리 기술에 달렸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자면 리튬이 확보돼야 한다. 석유를 두고 지구상의 안보 환경이 형성됐듯이 리튬을 두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을 것도 같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