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라인' 삼키려는 日? "항상 주위에 눈독, 동아시아 지정학 안변해"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24.05.07 13:36
글자크기

세계적 석학 김화진 교수 신간 '지정학과 모빌리티'…"신지정학 시대, 국가간 무력충돌 가능성은 상수"

韓 '라인' 삼키려는 日? "항상 주위에 눈독, 동아시아 지정학 안변해"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라인 지분 매각을 압박했다는 내외신 보도가 연일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선 2019년 일본이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 경제보복 조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번 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 회장이 2018년 하네다공항에서 일본 검찰에 체포되고, 이듬해 음향장비 상자에 숨어 비행기 밀항에 성공한 희대의 사건까지 회자되고 있다.

일본은 왜 자꾸 이럴까? 본질적으로 '지정학' 때문이다. 세계적인 법학자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가 최근 출간한 <지정학과 모빌리티>는 일본의 지정학적 속성을 정확히 간파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구 약 1억3000만의 일본은 안전한 위치에 있지만 땅은 형편없는 나라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20% 미만이고 그나마 척박해서 항상 뿔뿔이 나누어진 채 서로 싸우고 살았다. … 좋은 위치에 있지만 땅이 나빠서 항상 주위에 눈독을 들여야 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 2019년에 일본이 한국에 취했던 경제보복 조치를 생각해 보면 일본은 결국 변할 생각이 없었다. 한국도 집요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같은 절박함도 없어졌다. 지정학은 변하지 않았고 주변국 국민들의 성격도 변하지 않았고 그네들의 힘도 변하지 않았다. … 동아시아의 지정학은 변하지 않는다. 부단한 절차탁마 말고는 답이 없다.





저자는 카를로스 곤 사건에 대해 '일본 측의 대응이 과했고 특히 곤 회장에 대한 처우는 매우 가혹했지만, 개방적인 것 같으면서도 실은 매우 배타적인 일본이라는 특이한 나라'라며 일본을 묘사했다. 또 '제국주의시대 광기 어린 만행, 과거사 문제에 대한 유령 같은 태도, 그러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 개개인으로 특징지어지는 모순된 나라인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큰 역량을 가진 나라'라며 '역사에 대해 특이한 인식을 가진 이 위험하고 유능한 우방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항상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정학과 모빌리티>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전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들의 진면모를 두루 살폈다. △유럽의 영국, 독일, 스위스, 포르투갈, 벨기에, 몰타, 그리스, 러시아 △미주의 미국, 캐다나, 볼리비아, 푸에르토리코 △아프리카·중동의 이집트, 리비아,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아시아의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등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상세히 분석했다.

땅 위에 서 있는 국가들뿐만 아니다. 해역 등 지구상의 모든 영토를 다뤘다. 경제적·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세계 각국이 다투고 있는 해양 지형과 섬, 운하 등 수로는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주목받은 크림대교, 둘로 나뉘어진 크로아티아 영토를 연결하는 펠레샤츠대교와 같은 다리들까지 지정학적 의미를 조명했다.


한 나라의 경제는 땅과 교역으로 기초가 정해진다. 땅의 모양과 물길, 위치와 비옥도, 땅속에 묻혀있는 자원이 출발점이다. 경제활동의 주체인 우리 인간도 땅에서 태어난다. … 영토에는 한 국가의 역사적 기억과 현실의 애환, 미래의 여망이 농축되어 스며있다. 영토분쟁이 대상의 규모나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국가적 동력을 작동시키고 전쟁까지 부르는 이유다. 여론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남의 '우리 땅'에 대한 도발이다. … 섬은 …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어서 국민 정서가 쉽게 집중된다. … 우리 독도가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유도 같다.



김화진 서울대 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김화진 서울대 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신지정학 시대, 미국과 유럽이 달라졌다
김 교수는 서울대 로스쿨에서 기업과 법, 두 축을 중심으로 회사법, 기업지배구조, M&A(인수합병), IB(투자은행) 등과 관련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왔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인문학적 흐름에도 능통한 학자로 평가받으며 미국 미시간대, 스탠퍼드대, 뉴욕대 등에서도 강의했다. 박사학위는 해양법 분야를 연구해 1988년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받았다.

<지정학과 모빌리티>는 지정학과 모빌리티(이동·운송수단)라는 2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인간과 국가 그리고 전세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김 교수의 연구와 고민을 담았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를 들여다봤고, 인간의 본능이자 생존요건인 '이동'을 실현하는 모빌리티를 통해 인간과 국가가 지정학적인 특성을 어떻게 초월해 왔는지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저자는 이 책을 내면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열악한 조건에 있지만 개인과 기업이 지정학을 공부하고 모빌리티를 활용해 멀리 다니며 세계의 지리와 문화를 알면 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 전체가 역량을 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자는 현재를 '신지정학 시대'로 선언한다.

신지정학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기업과 국가는 이제 오래전의 가까운 관계로 복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적이 분명한 '외국기업'으로 성격을 바꾸고 있고 각국 정부도 외교와 안보 역량을 보강해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자국 기업의 해외사업을 지원한다. 글로벌 공급망과 개방경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아직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모습의 새 시대가 시작된다. 국가간 무력충돌 가능성도 상수로 등장할 것이다.



신지정학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의 원인은 물론 지정학 때문이다.

지정학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시기가 문제였지 피할 수 없었다고 본다. … 좀 과장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포기하든지 나라를 접든지 양자택일해야 할 수준이다. …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를 보호해 줄 수도 있고 지중해의 관문이 될 수도 있다. … 러시아로서는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 우리와 일본의 관계처럼 이익 충돌은 상당 부분 지정학에서 온다. 역사가 그 증거다. 땅의 성질과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로 이해가 달라지고 결국에는 싸우게 된다.



저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에 미국의 911에 비견되는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유럽의 전통적인 중립국으로 '국제정세와 무관함을 나라의 정체성과 경제의 기초로 해서 살아 온 스위스'가 우크라이나 편을 들고 나선데 대해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기업들은 물론이고 각 분야에서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현실에 맞추어 새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독일의 재무장을 주목하며 '유럽과 세계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독일을 분단시켰던 러시아가 그를 촉발시켰다는 것이 공교롭다'고 했다. 또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가스프롬 주가가 폭락했는데 글로벌 에너지시장 충격으로 전세계가 진행하고 있는 탄소 제로 프로젝트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지정학 시대에 달라진 것은 유럽의 사정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례없는 상대적 평화의 시기에 세계 각국이 거의 아무런 장애 없이 교역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질서와 안전을 담당했던 미국이 달라졌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역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천혜의 지정학 국가 미국이 돈만 많이 드는 국제질서 유지 역할을 접고 있다. 저자는 '이제 글로벌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치는 이렇게 뒤죽박죽이고 다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문제는 미국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내에서 정치적 변화가 초래한 정치권의 모든 결정은 글로벌 지정학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수행하는 역할과 군사력, 글로벌 경제와 금융 장악력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을 부랴부랴 국내로 걷어 들이고 있어서 경제도 곧 문을 잠글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없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좌표와 '지침'이 없어진 결과 각자 알아서 해야 된다. … 지정학의 연구에는 모든 나라의 정치와 외교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지만 특히 미국의 (국내)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연구는 필수다.



미국이 달라지기 시작했더라도 해양으로 뻗어나가려는 중국을 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 미국이다. '과거 러시아가 해양 세력이 되려는 것을 영국이 집요하게 저지했듯이 지금은 미국이 중국의 해양 세력화를 막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맞붙은 곳은 남중국해다. 중국은 바다에 큰 관심이 없었다가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남중국해는 전세계 해상운송의 3분의 1을 담당하며 중국은 원유 수요량의 80% 이상을 남중국해를 통해 수입한다. 저자는 '만일 이 해역에서 해상봉쇄를 당한다면 몇 달 안에 중국 경제는 붕괴할 것'이라면서도 '중국과 필리핀, 베트남이 대대적인 무력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저자는 중국이 대만 침공으로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하지만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해군력이 약한데다 대만 침공에 성공해도 엄청난 출혈에 더해 남중국해가 막히게 돼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인 권위체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위해 경제 측면에서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사는 권력이 집중된 권위주의 정체가 국제교역에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변이든 코로나든 권력을 가진 소수에 변고가 생기면 전체가 무너진다. 그런 교역 상대는 믿기 어렵다. … 현재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크고, 국토의 부분 부분이 연결성이 떨어지고 사람이 많아서 중앙에서 그것도 1인 권위체제로 전체가 통치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 힘으로 통치할 수밖에 없는데 힘에는 한계가 있다. … 중국의 경착륙은 우리를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결국 중국이 어려워진다면 그 여파가 적지 않을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새로운 전동화 비즈니스 플랫폼인 'ST1'의 물류 특화 모델 카고, 카고 냉동을 선보인 가운데 23일 인천 연수구 센트럴로 송도컨벤시아에서 '내일을 바꾸는 모빌리티 ST1' 신차 발표회를 가졌다. 이번에 선보인 'ST1'은 사용목적에 따라 최적화 형태로 확장시킬수 있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샤시캡, 카고, 냉동 등이 주요 라인업이며, 샤시캡 모델을 바탕으로 고객 비즈니스에 맟춰 경찰 작전차, 응급 구조차, 캠핑카는 물론 전기 바이크 충전차, 이동식 스마트 팜, 애완동물 케어 숍 등 다채로운 특장 모델로 제작할 수 있다. /사진=임한별(머니S)현대자동차가 새로운 전동화 비즈니스 플랫폼인 'ST1'의 물류 특화 모델 카고, 카고 냉동을 선보인 가운데 23일 인천 연수구 센트럴로 송도컨벤시아에서 '내일을 바꾸는 모빌리티 ST1' 신차 발표회를 가졌다. 이번에 선보인 'ST1'은 사용목적에 따라 최적화 형태로 확장시킬수 있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샤시캡, 카고, 냉동 등이 주요 라인업이며, 샤시캡 모델을 바탕으로 고객 비즈니스에 맟춰 경찰 작전차, 응급 구조차, 캠핑카는 물론 전기 바이크 충전차, 이동식 스마트 팜, 애완동물 케어 숍 등 다채로운 특장 모델로 제작할 수 있다. /사진=임한별(머니S)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 조선·자동차 강국 한국의 기회
<지정학과 모빌리티>는 중요한 국제 이슈를 다루고, 생소할 수도 있는 다른 나라와 지역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56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읽기가 어렵지 않다. <지정학 세계여행>, <모빌리티 세계여행>, <영화 세계여행>이라는 챕터 제목처럼 '여행' 가이드북 같기도 하다. 때때로 저자의 유머러스한 문체가 웃음 짓게 하고, 어떤 지역이나 사건의 역사적 기원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는 대목에선 '아하 그랬던 거구나'하며 무릎을 치게 한다.

특히 수많은 영화들이 지정학과 모빌리티에 관한 사건과 배경들을 '보충설명' 해준다. 엄청난 시네필임이 분명할 것 같은 저자는 1930~1940년대 영화부터 최신작까지 수많은 영화들을 독자의 이해를 돕는 사례로 제시한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강제 합병 때를 배경으로 한 <사운드 오브 뮤직>, 스코틀랜드 배경의 <브레이브 하트>와 <하이랜더>, <뉘른베르크의 재판>과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등 역사를 다룬 영화들. 이처럼 책에서 다룬 역사적 사건이나 지역 배경과 관련된 영화들이 거의 다 있다는 게 신기한데, 영화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자되는 만큼 매우 중요한 사건과 훌륭한 배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항공을 테마로 한 부분에서 저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소개하며 '항공 안전과 승무원들의 프로정신 같은 주제가 다시 조명되었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영화와 스타의 힘이다. 성공적인 영화는 사회에 중요한 아젠다를 부각시키고 논의를 끌어내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기차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스케일과 방식을 바꾸어 준 교통수단이다. … 영화도 기차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극장에 앉아서 우리는 세계 어디라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아예 <영화 세계여행>이라는 부록을 덧붙였다. 수많은 영화와 전세계 곳곳을 소개했다. 독자는 로마, 파리, 취리히, 베네치아, 피렌체, 시에나, 아레초, 몬테카를로, 이스탄불 등 유럽의 도시들을 비롯해 미국의 워싱턴, 뉴욕, LA, 아시아의 상하이, 홍콩 등 수많은 지역을 영화와 함께 여행할 수 있다. 책상에 앉아서 세계 곳곳을 가보는 셈이다.

저자는 '007 시리즈'와 '본 시리즈'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어릴 때 007 영화는 바깥의 넓은 세상을 잠시라도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것은 우리뿐 아니라 항공 여행이 저렴해지고 TV가 나오기 전에는 세계 모든 곳에서,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 본드는 으레 그렇듯이 베네치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그 시절에 007 영화는 참 꿈 같던 영화다. 그리고 당연히 영화에 나오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보았고 인터넷이 없던 때라 다시 보고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제야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영화도 모빌리티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은 장소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급적 여러 곳을 다녀 사고의 폭과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며 "영화는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로 데려다주는데다 돈도 얼마 안드니 가장 효과적인 모빌리티"라고 했다.

저자가 지정학과 함께 매우 중요한 테마로 보고 있는 것이 모빌리티다. 선박 등 해운, 궤도운송인 기차, 대표적인 모빌리티 자동차, 미래의 모빌리티인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항공, UAM(도심항공교통)을 책에서 자세히 살펴봤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스포츠카 브랜드들까지 낱낱이 살펴본 대목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열광할 듯하다.

인간의 신체는 매우 제한된 기능만 가지고 있어서 공간 이동에 제약이 따른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이동 수단이다. … 이동 수단은 인간의 의식을 이동시켜주기 때문에 인간성과 경험 그리고 지식의 확대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 인간이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이동시키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요건이 인간의 활동을 장소적으로 제약한다. 그런데 그런 조건에 걸맞지 않게 인간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능하면 넓은 범위에서 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운송은 거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조선강국인 대한민국은 모빌리티 강국으로 앞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약 50년 전 아산 정주영 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출범시킨 이래 한국인들은 영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배를 가장 잘 짓는 사람들이다.' 현대그룹을 잘 아는 저자는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으로 신화처럼 전해지는 정 회장의 현대중공업 창업 스토리를 정 회장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이렇게 소개한다.

요즘과 전혀 다름없는 신중한 금융거래 과정과 은행의 경영판단 과정이 따랐다. 은행 임원이 거북선 그림에 설득되어서 배임에 해당할 수도 있는 행동으로 덜컥 돈을 빌려준 것도 아니고 백사장 사진만 보고 대형 유조선 두 척의 주문이 들어온 것도 아니다. 거북선 스토리는 다분히 동양적인 느낌도 주는데 실제로는 철저히 서양적인 엄중한 프로세스가 진행되었고 현대는 그 요건들을 다 충족했기 때문에 합격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들어 아는 이야기는 과장인 동시에 겸손인 셈이다. 어쨌든 오늘날 한국 조선산업은 아산이 이순신 장군의 '협조'를 받아 출범한 것이다. 12척으로 330척의 왜군을 막던 이순신 장군은 조선이 훗날 일본을 넘어 세계 1위의 조선국가가 된 것을 알면 감격하실 것이다.



韓 '라인' 삼키려는 日? "항상 주위에 눈독, 동아시아 지정학 안변해"
지정학 연구, 기업 경영에 필수…"세계에 촉각 세워야"
지정학 대변혁 시기, 신지정학 시대, '중상주의 시즌2' 시대를 가장 열심히 살피고 있는 곳은 기업이다. 결국 기업들이 이 시대에 적응할 방법을 잘 찾는 것에 국가의 운명도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은 그 시대에 적응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정부는 지원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학계와 미디어는 필요한 지식과 정부를 생산해서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삼성, 현대와 같은 우리 기업들이 동분서주하면서 미래를 살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경영자들은 요즘 해외에서 살다시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임기 첫 아시아 순방을 한국에서 시작했는데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가 첫 일정이었다. 우리 기업이 경제·외교·안보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례였다. '지금은 기업이 국가 이미지와 신용을 큰 비중으로 보강하고 안보의 한축이기도 한 시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일찍부터 새 시대를 준비해 온 기업이다. 저자는 2004년 출범한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과 2006년 출범한 현대차 체코 공장의 성공사례를 든다. 특히 슬로바키아 공장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당시 사장)의 '브레인 차일드'다. 정 회장은 당시 두 달에 한 번꼴로 현지를 찾으면서 절치부심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나라 밖에, 그것도 유럽에 후일 55초마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플랜은 한 가지 말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바로 선견지명이다.'



슬로바키아의 질리나 기아 공장은 현대적이고 하이텍이다. 공장 건물 내 중앙부에 대규모 직원 휴게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건설비용이 늘어났겠지만 임직원의 건강을 배려한 자연광 채광 장치도 잊지 않은 세심함이 인상적이다. … 당시 IT를 적용한 컨트롤 시스템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었다. 지금은 기본인 클린 팩토리도 마찬가지다. … 건설 당시 고비용으로 오버아닌가 하는 우려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론 기우였고 미래 ESG 시대에 일찌감치 대처한 셈이다. … 유럽의 현대차는 글로벌 경영과 리더십 교과서를 넘어서는 비범한 성공사례다. 이제 친환경과 전동화에서도 유럽의 스탠더드를 선도해 나아갈 것이다.



노스페이스로 알려진 글로벌 의류 및 신발 제조업체 영원무역은 글로벌 차원에서 미래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했던 선도사례 기업이다. 40년 전인 1980년대에 해외에 진출해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지었고, 지역민들에 청정수를 공급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비중이 큰 외국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미 40년도 더 전에 한국기업이 진출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 영원 창업자 성기학 회장은 서울대 무역학과(현 국제경제학과) 출신의 성공한 기업인이다. … 기업과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다. 특히 위기관리를 이해관계자 배려 차원에서 이해하는 경영관이 인상적이다. 그 결과 코로나 시기에도 흔들림 없었다. 세계적 조류인 ESG 경영의 핵심이 '인권경영'이다. 단기간에 급속히 성장하는 신흥시장에서는 근로자 처우와 환경이 열악하기 쉽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신흥시장에서의 노동착취로 비난받았다. 영원무역은 그 반대다. 이 사례는 한국기업이 해외 사업장에서 ESG가 제시하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제 지정학 연구는 기업 경영에 필수다. '우리 기업의 경영자들과 이사회는 향후 지정학을 더 큰 비중으로 기업 리스크 관리에 포함시켜 다루어야 할 것이고 기관투자자들은 지정학 리스크가 포트폴리오 가치와 ESG에 발생시키는 파장을 감안해 스튜어드십을 정비해야 한다.'

최근 미국·유럽 대학들은 지정학 리스크와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앞다퉈 개설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야말로 지정학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요즘은 기업의 사회적 기여도를 중시하는 ESG 시대"라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책임감이 더 커졌다. 전쟁이 터지자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러시아에서 철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촉각을 세우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대비해야 한다"며 "앞으로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빈번히 일어날텐데 어느 지역이 위험할지 또 어디에 해외 공장을 지어야 가장 유리할지 기업 경영자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기업들과 대한민국이 지정학을 잘 연구해 새로이 도약하고 성장한다면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까? 본성을 끊임없이 실현하고 한계를 돌파해 온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인류와 세계는 또 무슨 일을 벌일까? 저자가 바라보는 곳은 바로 '우주'다.



이제 우주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 인류는 결국 우주로 진출할 것이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증거다. 여기에는 경제적 이유보다는 인간 본성이 더 작용한다. '저 산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바다 건너에는 뭐가 있을까'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끝없이 알고 싶어 하는 존재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