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돌고 돈다

머니투데이 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 선원장 2024.05.0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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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혜원 스님△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빗방울은 어디에서 왔을까. 허공의 수증기가 모여서 그렇다면 그 허공의 수증기는 어디에서 왔나. 계곡에서 바다에서, 혹은 물이 증발하는 모든 곳에서 왔을 것이다. 그래서 물방울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대단한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이라도 그 모든 것을 계산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방울의 물은 꼭 물의 형태로만 변해갈까. 아니다. 그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변해갈 수 있다. 하나는 하나로 전이되는가. 아니다. 애초에 그 물방울을 하나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일뿐더러 그것이 수백, 수천의 입자로 나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 속의 순환은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일기예보를 정확히 할 수 없기도 하다.

나라는 개체도 마찬가지다. 나의 몸을 이루는 피와 살과 뼈는 어디에서 왔나. 그것은 나 자신이 먹고 마신 모든 것의 변화다. 나의 생각과 경험도 독자적으로 있을 수 있는가. 그것도 모든 인연 속에서 경험하고 판단한 임의로 형성된 그 무엇이다.



책에서 우연히 읽은 생각의 파편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되살아나기도 하고 지나치는 바람소리에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도 한다.

나의 몸과 마음은 이 세상 전체의 상호작용이기도 하며 시작 없는 오랜 과거가 흘러온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불행한 일에 대해 분명히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거나 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며 그 이유를 찾아 헤맨다.

실제로 저런 질문을 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그들은 억울함과 고통의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그야말로 애를 쓴다. 그걸 어찌 단편적으로 부분만을 떼어내 설명할 수 있겠는가. 태양은 태양의 운동을, 달과 지구도 각자의 운동을 하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우주 전체가 거리와 크기에 상관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제(5일) 빗속에서 다비식을 마친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의 생각 속으로 윤회하고 있다.


나는 주변 모든 것으로 윤회하고 그것들은 역시 나를 향해 윤회한다.

매 순간 나는 나와 우주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이든 나 자신에게 달렸다.

그 선택이 자신과 우주의 무질서 정도를 증가시키면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그 무질서의 정도를 감소시킨다면 평온해질 것이다.

세상 대부분 사람은 혼란함을 증가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것은 외부의 자극에 쉬지 않고 대응해 욕심을 부리거나 분노를 표출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런 에너지는 그 해소될 구석을 찾아 분출된다. 만만하고 약한 곳을 찾아 흘러간다.

때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런 혼란한 인연이 흘러들면 그것에 대응하기보다 고요히 바라보고 흘려보낸다. 그는 조용히 이 세상에 평온함을 전한다.

무차별하게 돌고 도는 세상 속에 우리는 소모되고 소진되는 땔감이 되거나 그 흐름 속에 자신과 불특정 다수를 위해 마음의 평화를 추구할지 그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지만 흙에 물들지 않고 그 물을 정화하며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오탁악세라 부르는 이 사바세계 속에서 미소 지으며 정처 없이 거니는 나그네를 그리게 되는 계절이다.

과도한 집착과 몰입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에 휴식을 선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잠시만이라도 휴식을 선물하는 인연이 있으면 좋겠다.

그 잠시의 휴식과 평화의 가치를 경전에서는 온 우주를 칠보로 장엄해 보시하는 공덕보다 더 크다고 했다. 복과 지혜가 있는 이는 그 마음의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 평화를 깨뜨리는 것들을 주의한다.

돌고 도는 세상 속에 우리는 무엇으로 어디로 흘러가는가. 마음의 평화로 모두가 흐른다. 모두가 떠밀리거나 끌려가지 않는 콧구멍 없는 소가 돼 여유롭게 자유로이 초원을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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