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넘어 웬 허리 수술? "참기만 하는 게 더 문제" 척추 전문가의 일침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2024.05.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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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강준 강남베드로병원 대표원장

허리(척추)는 노년 건강의 대들보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 활동량이 줄고 근육이 마르는 근감소증으로 이어진다. 혈관과 각종 장기 기능이 한꺼번에 떨어지며 사망률이 급증한다. 100세 건강을 다짐하는 "걸산"(걸어야 산다)이 각종 모임의 건배사로 인기를 끄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척추·관절은 오래 쓸수록 고장 나기 쉽다. 아무리 비싼 자동차도 세월이 지나면 타이어나 부품이 마모되듯 뼈와 연골도 나이가 들수록 쉽게 닳고 약해진다. 나이 들어 한 번도 허리 통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너무 일반적인 증상이다 보니 치료를 포기하고 통증을 참고 견디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70대, 80대에 허리를 수술·시술한다면 "마취하면 못 깨어난다"라거나 "참고 살지 애꿎은 돈을 들이고 유난이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병원에서도 위험 부담을 고려해 수술하지 않는 걸 권유하기도 한다.



허리 아파 먹는 약 늘리다 건강 망가져
나이 들면 아파도 참고 치료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걸까. 윤강준 강남베드로병원 대표원장(신경외과 전문의)의 답은 "아니오"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허리 치료에 힘써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다. 의사로서 허리 치료에 효과가 큰 고령 환자가 훨씬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윤강준 강남베드로병원 대표원장이 3일  70대 이상 초고령층을 위해 지난달 출범한 '고령 특화 치료 전담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 강남베드로병원윤강준 강남베드로병원 대표원장이 3일 70대 이상 초고령층을 위해 지난달 출범한 '고령 특화 치료 전담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 강남베드로병원


윤 원장은 "통증을 줄이려 약을 먹으면 그 부작용으로 몸이 더 안 좋아진다. 통증으로 잠을 못 자 수면제를 먹고, 소화가 안 돼 소화제를 처방받는 등 먹는 약이 늘어나면서 건강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오히려 수술과 시술을 필요한 곳만 정확히 시행하는 게 노년기 건강 관리에 훨씬 이롭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윤 원장은 "치료 의지가 있는 환자라면 누구나 나이와 관계없이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며 "인프라, 전문성 부족 등 병원의 제반 환경과 이로 인한 오해에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30년 넘게 허리 치료에 매진해 온 윤 원장이 70대 이상 초고령층을 위해 지난달 '고령 특화 치료 전담팀'을 출범하게 된 배경이다. 대학병원에서 암 치료법을 결정하는 데 활용하는 '협진 시스템'을 척추 치료에 도입한 것. 윤 원장은 "신경외과 강준기 명예원장, 척추센터 이춘성 원장, 심장내과 김경수 원장 등 10개 진료과에서 진료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만을 골라 팀을 짰다"며 "매일 오전 8시에 진료과가 모여 수술 예정 환자, 수술을 진행한 환자 케이스를 논의한다"고 말했다.

강남베드로병원 협진 시스템은 특히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나이가 들면 허리뿐 아니라 무릎, 어깨 등 곳곳이 아프다. 허리 통증을 보완하기 위해 무릎에 부담이 커지거나, 반대로 무릎이 아파 잘못된 자세를 하다 보니 허리가 고장 나기도 한다. 환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을 먼저 치료하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강남베드로병원은 매일 오전 8시 모든 의료진이 한 곳에 모여 수술 전 후 환자 케이스를 심도있게 토의한다./사진=강남베드로병원강남베드로병원은 매일 오전 8시 모든 의료진이 한 곳에 모여 수술 전 후 환자 케이스를 심도있게 토의한다./사진=강남베드로병원

보통 협진에서는 X선,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등 영상 촬영 결과와 환자 상담 내용을 토대로 치료 순서, 방법을 결정한다. 강남베드로병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의 주요 기준으로 쓰이는 '일상생활 수행 능력 평가 지표'(이하 ADL)를 수술 가능 여부 및 치료 범위를 검토하는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고 있다. ADL 항목에 식사와 보행 수준, 의식 상태, 독립적인 일상생활 수준 등을 체크해 환자에 가장 적합한 '맞춤형 치료계획'을 세운다.

윤 원장은 "ADL 평가를 하는 별도의 팀이 자료를 제시하면 이와 함께 고혈압, 당뇨병, 골다공증 등 환자가 앓는 만성질환과 영상 검사 자료를 종합해 수술·시술부터 재활까지 맞춤 치료 프로세스를 수립한다"며 "어떤 부분은 수술이 필요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1차 치료로 벨런스를 맞춰주기만 해도 훨씬 좋아질 수 있다. 환자도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지 않고 한 곳에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수술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 훨씬 만족해한다"고 전했다.

척추 치료, 고령층도 '전신마취' 효과적
고령 특화 치료 전담팀이 환자 치료 계획을 세울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마취 과정이다. 체력이 약해진 데다 고혈압, 당뇨병 등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앓는 경우가 많아 마취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강남베드로병원은 수술 전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마취 시스템을 정교하게 조절한다. 예를 들어 심혈관계 질환을 지닌 환자는 수술 전 심장초음파와 MRI 등 영상 촬영 검사를 통해 수술 적합성을 판단한다. 마취 중에는 비침습적 모니터링 장비로 헤모글로빈과 파형변이지수(PVI) 등 혈역학적 변화를 연속 측정해 안정성을 확보한다. 수술 중 저체온을 막기 위해 히티드 서켓(heated circuit), 강제공기가온요법(forced air warming), 보온 담요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정상 심부 온도를 유지하는데도 신경을 쓴다.

윤강준 대표원장이 해외 척추 전문의를 대상으로 양방향 척추 내시경 수술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강남베드로병원윤강준 대표원장이 해외 척추 전문의를 대상으로 양방향 척추 내시경 수술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강남베드로병원
이를 통해 고령층이 꺼리는 전신마취도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다고 윤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어르신들은 마취에서 깨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에 부분마취를 선호하지만, 마취약의 양과 농도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호흡과 혈압 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전신마취가 더 안전할 수 있다"며 "척추 굴곡이 심한 경우 수술 중 움직임을 줄이면 훨씬 나은 치료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담팀이 가동되면서 병원에는 70대 이상 초고령층이 속속 몰려들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나이가 많아서, 암 수술받아 '치료 불가' 판정을 받고 이 병원을 찾아 "치료해보자"는 긍정적인 답변에 눈물을 흘리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병원을 찾은 95세 척추관협착증 환자는 성공적인 수술과 재활로 전보다 훨씬 활력있는 삶을 지낸다. 85세, 83세 부부 환자가 차례로 허리 수술을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퇴원하기도 했다.

윤 원장은 "진료실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냥 참고 살지 왜 수술하시느냐' 였다. 젊은 사람에게는 못하면서 나이가 들었다고 불편과 고통을 그대로 감수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건강을 과신하는 젊은 세대보다 의료진을 믿고, 치료와 재활에 잘 참여하는 고령층이 회복이 더 잘되기도 한다. 건강하게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치료 성공 사례를 늘리고 특화 치료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더욱 집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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