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장중 달러당 34년 만에 160엔대를 넘어선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사진=뉴스1
세계에서 가장 지루한 통화로 불렸던 엔화가 가장 투기적인 통화가 됐다. 달러당 160까지 곤두박질친 엔화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세계 5대 기축통화로서의 입지가 위협받는 수준이다. 시장에선 엔화 급락이 단기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일 금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29일 환율 개입에 48조원 쏟아부은 日 정부1일 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은행이 공표한 당좌예금 잔고를 토대로 "일본 관리들이 지난달 29일 엔화를 지지하기 위해 5조5000억엔(약 48조3500억원)을 썼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이 엔화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엔화를 사면 민간금융기관이 일본은행에 맡기는 당좌예금으로부터 엔이 국고로 이동해 당좌예금이 감소하는데, 이를 계산한 것이다.
달러 당 엔화 환율이 158엔을 돌파하며 34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 28일 서울시내 한 환전소에 달러와 엔화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스1
미-일 금리 차이는 구조적 문제… 아시아 통화 동반추락 부르나엔화 가치 안정의 열쇠는 결국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행보에 달려있다. 지난 3월 수십년만에 마이너스 수준에서 벗어났지만 어느 선까지 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상황은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견실하다보니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금리 인하가 늦춰지고 있다. 연준이 당장 금리를 낮춘들 일본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해 섣불리 금리차이를 좁히기도 어렵다. 이같은 구조적 상황은 투기 세력의 베팅을 부추길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그간 엔저로 수혜를 봤던 이들도 수입 비용이 뛰고 소비자 지출이 부진해지자 태도를 바꾸고 있다. 도요타 등이 회원으로 있는 일본 최대 기업 로비단체 경단련의 도쿠라 마사카즈 대표는 "엔화가 너무 약하다"고 말했다. 일본항공의 돗토리 미츠코 최고경영자(CEO)도 "환율이 '큰 문제'"라며 "엔화가 달러당 130 수준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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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한 도쿄 시민이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일본 정부의 개입이 엔화 약세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환율방어 가능성이 점쳐진 지난 4월 23일까지 1주일 동안 글로벌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은 엔화 약세에 대한 베팅을 역대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런던 모넥스유럽의 외환분석책임자 시몬 하비는 "투자자들이 가치 저장수단으로서 엔화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정부의 은밀한 개입 만으로는 더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은행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