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 영향권 들어선 K-배터리…다음 스텝은 '투자속도 조절'

배터리 산업의 모든것 'InterBattery 2024'가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가운데 참관객들이 각 기업의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임한별(머니S)

배터리 업계가 전기차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 영향권에 진입했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과 삼성SDI, SK온의 1분기 실적이 일제히 전년 대비 둔화했다. 업계는 당분간 전기차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에 LG엔솔과 SK온은 설비 투자 속도조절을 염두에 둔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9% 줄어든 2674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삼성SDI의 실적이 배터리 3사 중 가장 양호했다. LG엔솔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75.2% 감소한 1573억원이었다. SK온은 1분기 영업손실 3315억원을 기록하며 적자폭이 커졌다.

3사 이익 감소의 공통된 원인은 전기차 캐즘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차 대중화 문턱에서 구매 수요가 감소한다는 경고가 나왔고, 실제로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재고조정과 생산 조절에 나섰다. 이 같은 전방 시장 사업환경 변화에 배터리 업계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번 1분기 실적을 통해 확인됐다.

SK온이 캐즘 충격을 가장 강하게 받았다. 재고 소진효과로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가 예상보다 줄자 그동안 실적 버팀목이 된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금액도 전분기 2401억원에서 1분기 385억원으로 대폭 깎였다. 이에 SK온은 가동률 조정에 나섰다. SK온은 헝가리 이반차 공장(30GWh)의 가동을 1분기에서 2분기로 미뤘다.

[서울=뉴시스] =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세계전기차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EVS37)'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CTP(셀투팩) 배터리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LG엔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분기 영업이익에서 AMPC 분을 제외하면 사실상 300억원대 적자였다. 회사 측은 전방 시장 수요 둔화, 가동률 조정 등에 따른 고정비 부담 증가, 메탈가 하락으로 인한 원재료 투입 시차(Lagging) 효과, 미국 미시간 법인의 신규라인 전환에 따른 일부 생산라인 중단 등을 실적 부진의 이유로 설명했다.

삼성SDI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건 캐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프리미엄 차량용 배터리가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그동안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를 앞세운 고급화 전략을 펴왔고, BMW나 아우디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주 고객사로 뒀다. 이 같은 고부가 브랜드 전기차가 견조한 판매를 유지해 실적 선방이 가능했다는게 업계 분석이다. 하지만 캐즘이 부담스러운건 마찬가지다. 회사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가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고, 유럽 성장률이 더 약세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1분기 실적으로 캐즘 영향이 확인되자 업계는 투자와 증설 속도조절에 나설 채비를 한다. SK온은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비우호적인 업황에 대응하고자 유럽 및 중국의 설비 증설 시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다. LG엔솔은 올해 작년과 유사한 10조원 수준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 계획을 재검토키로 했다. 수요 감축 현상이 두드러지는 지역에 위치한 폴란드 브로츠와프 및 중국 난징 공장의 증설을 미룰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서울=뉴시스] =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4' 삼성SDI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살펴보고 있다. 2024.03.06. [email protected] /사진=김진아

다만, 삼성SDI는 올해 투자도 지난해 보다 대폭 늘릴 계획이다.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올해 헝가리와 말레이시아 공장 증설, 미국 합작공장 투자를 진행 중이며 46파이(지름 46㎜)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 신제품 투자도 계획 중"이라며 "전년 보다 투자는 상당히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그동안 LG엔솔과 SK온 대비 투자 규모가 작었던 만큼 투자 여력이 있다고 보고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는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 환경에서도 초격차 기술경쟁력 확보,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변화와 혁신을 통해 2030년 글로벌 탑티어 회사 달성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