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이래도 돼?" 쿠팡 파격 인상…공정위 손 못 쓰는 이유

머니투데이 세종=유재희 기자 2024.04.2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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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소상공인연합회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소상공인연합회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쿠팡이 와우멤버십 월 회비를 약 60% 인상하는 것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하긴 어려워 보인다. 일방적인 가격인상이지만 현행법상 불공정거래행위인 '가격남용행위'를 적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우선 쿠팡의 관련 시장 점유율은 20%대에 그쳐 시장지배적지위 사업자가 아니다. 여기에 사업비용·재무 상황 등에 비해 회원비를 과도하게 높였는지도 입증하기 어렵다. 또 가격남용행위의 법 집행한 사례도 충분치 않은 데다 경쟁당국이 시장가격에 간섭하는 것이 타당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쿠팡, 시장지배적 사업자 아니다
22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최근 쿠팡의 와우회비 인상 관련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인 가격남용을 검토를 할 수 있지만 여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쿠팡의 유료 멤버십 회비 인상이 논란이 불거졌다. 쿠팡은 8월부터 와우멤버십 월 회비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올린다. 가격 인상률은 58%다.



여론의 관심은 공정위가 와우회비 인상에 개입할 수 있을지였다. 가격남용 행위를 염두에 두고 살펴볼지가 관건이었다. 가격남용행위는 정당한 이유 없이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수급이나 공급에 필요한 비용 변동'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시키거나 근소하게 하락시키는 경우다.

문제는 쿠팡이 행위 전제조건인 시장지배적지위 사업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시장지배적지위 사업자에 해당하기 위해선 관련 시장 점유율을 50% 이상, 3개 사업자의 점유율 합이 75% 이상이어야 한다. 2022년 기준 △쿠팡의 점유율을 24.5%다.△ 네이버 23.3% △SSG닷컴·지마켓 11.5% 등과 합치더라도 75%를 밑돈다.


또 공정위는 조만간 쿠팡이 임직원 등을 동원해 자체브랜드(PB) 상품 구매 후기를 쓰도록 한 행위에 대해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서도 시장지배적지위가 인정되지 않았다. 문제의 행위가 '자사우대'로 비춰졌지만 실제 당국은 공정거래법상 고객 부당 유인행위로 보고 있다.

또 쿠팡이 시장지배적지위 사업자라 하더라도 와우회원비를 부당하게 인상했는지 따져야 한다.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심사기준'을 보면 사업자의 재무 상황, 사업비용 변동 등을 고려한다. 우선 쿠팡이 사업비용 대비 회원비를 과도하게 높였는지가 명확치 않다. 그동안 쿠팡의 장기간 적자 상태 등 내부사정도 가격 인상의 사유가 됐을 수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의약품 제조사가 암 환자 등을 대상으로 제품 가격을 수백퍼센트(%)로 올리는 등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가격남용행위를 적용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한킴벌리 사건 무혐의…학계 "가격개입 제한"
가격남용행위의 제재 사례도 충분치 않다. 최초의 제재 사례는 1992년 해태제과 등 제과 사업자들의 가격 인상 건이다. 이들은 제품의 용량을 평균 16.5% 정도 줄이면서 가격은 그대로 두는 방법을 썼다.

공정위는 당시 가격 인상률이 원가 상승에 비해 컸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재했다. 다만 초기 사건이었던 만큼 행위 판단이 타당치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비교적 최근 사례도 있지만 무혐의 처분됐다. 당국은 2018년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 인상 건에 대해 3차례 현장조사 등을 했지만 혐의를 찾지 못했다. 유한킴벌리의 공급가격 인상률은 제조원가 상승률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

학계도 가격남용행위에 대해 신중하다. 박창규 고려대 ICR센터 연구위원은 논문 '가격남용에 대한 공정거래법적 고찰'에서 "경쟁법의 관점에서 시장의 높은 가격을 경쟁당국이 규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경쟁당국이 개입할 경우 시장의 자율적 자원배분 기능과 본래적 효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쟁자가 지속적으로 시장진입을 하지 못하거나 상당기간 동안 시장이 과도한 가격을 정정할 수 없는 경우와 같은 예외적 경우에만 가격남용행위로 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플랫폼의 가격 인상 논란이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특히 쿠팡·넷플릭스처럼 이용자 의존도가 높은 경우 가격 인상이 소비자 후생에 부정적일 수 있다. 이른바 '잠금효과(lock-in)' 때문이다. 특정 플랫폼 이용이 다른 선택을 제한, 기존 제품을 지속 구매하는 현상이다.

소비자의 선택이 고착되면 소수 플랫폼의 시장 독점도 공고해진다. 이 경우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입점업체 등의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간 공정위가 법안 제정을 추진, 플랫폼 독점에 따른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율에 집중했던 이유다.

한 위원장은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가격 인상과 관련해 저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라면서 "경쟁이 존재하면 어떤 기업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크게 상승하는 것은 상당히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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