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디지털로 혁신한 선진국 대학이 몰려온다

머니투데이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전 한국방과후학교학회장 2024.04.1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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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같은 대학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미국 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어느 대학의 석사 프로그램을 마쳤다는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몇 년 전 해외 대학의 '온라인 공개강좌'(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듣던 학생들이 학점을 달라고 했을 때도 그랬다. 조만간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해외 대학들이 거세게 몰려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온라인 학습 시대는 2001년 MIT가 '온라인 무료강의 서비스'(open course ware)를 제공하면서 서막이 올랐다. 전 세계 최고의 교수와 학생, 막대한 연구비를 자석처럼 끌어모으는 초일류 대학이 디지털 혁신의 불을 댕긴 것이다. MIT는 '개방형 학습 플랫폼'으로 더 평등하고 포용적인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전 세계 누구나 지식의 창고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MIT의 노력을 글로벌 대학의 교육적 책무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MIT는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교육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게 됐다.



10년 후 2011년 스탠퍼드대 두 교수는 누구나 무료로 인공지능을 배우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 '유다시티'(Udacity)를 선보였다. 공동 창업자인 세바스천 스룬 교수는 인공지능을 배우고 싶은 학생은 앞으로 비싼 돈 내고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선포했다. 1년 뒤인 2012년 스탠퍼드대 다프네 콜러 교수도 '어디서나 배우는 대학'(university of everywhere)을 내세워 '코세라'(Coursera) 플랫폼을 만들었다. 변화와 혁신을 외면한 대학들은 그들의 시도를 참신한 교육스타트업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오만이다. 오늘날 유다시티는 240개국에서 1700만명이 등록한 플랫폼이 됐고 20만개 넘는 수료증이 발급됐다. 코세라는 전 세계 270여개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1억명 넘는 사람이 코세라 프로그램을 찾았다. 이뿐인가. 영국 '퓨처런'(Future Learn)도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고등교육 생태계가 등장한 것이다.

학생에 굶주린 미국 대학들도 영토확장에 나섰다. 뉴욕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다른 나라 대학과 온라인으로 공동수업을 하는 '국제 공동학습 프로그램'(Collaborative Online International Learning)을 운영 중이다. 파트너 대학의 학생끼리 디지털 세계에서 공동프로젝트도 한다. COIL 체계는 아시아에서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홍콩대학이 대표적이다. 필자가 있는 성균관대도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대학의 교수들과 공동수업을 진행했고, 홍콩대학과 COIL 확산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한다. 이제 디지털 교육혁신은 빅데이터 기술에 힘입어 '뒤처진 학생'이나 '위기 학생'을 찾아내 '맞춤형 교육개입'을 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지역주민이나 재직자의 '재교육'(re-skilling)과 '향상교육'(up-skilling)을 위한 온라인 프로그램 개발도 활발하다. 디지털 배지나 e포트폴리오는 아날로그 시대의 학사체계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학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2021년 스탠퍼드대학과 MIT는 나란히 '디지털교육'과 '오픈러닝'을 전담하는 교내 기구를 만들었다. MIT의 오픈러닝 담당 부총장은 16개팀을 이끌면서 온라인강의 개발, 디지털콘텐츠 제작, AI 활용수업 개발 등 디지털혁신을 총괄한다.

'국경 없는 학습 시대'가 됐다. 에듀테크의 발전으로 어디서나 세계 최고 교수의 강의를 듣고 바다 건너 학생들과 공동수업을 할 수 있다. 국내 민간교육 공급자들과 경쟁해야 할 때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우리 대학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학습혁명의 물결에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나. 분명한 사실은 혁신과 변화를 외면한 대학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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