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님, 도대체 어디까지 가시려고 이러세요?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4.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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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가 없는 영역 무한 확장! 대박 유튜버 등극

채널 십오야 SNS 캡쳐채널 십오야 SNS 캡쳐


지난 4월8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있는 한 카페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생카’ 곧 ‘생일 카페’가 열린 것이다. 생일 카페, K-팝신의 아이돌을 비롯해 많은 연예인들의 팬들이 여는 행사다. 최근에는 아이돌 가수를 넘어 배우로도 번졌고, 최근 영화 ‘파묘’를 통해 ‘할꾸(할아버지 꾸미기)’의 아이콘으로 올라선 배우 최민식의 팬들도 열었다. 그런데, 그게 뭐?

이날 열린 ‘생카’의 특징은 한 유튜버, 인플루언서 아무튼 유명인의 생카였다는 것이다. 카페 창문을 꾸미고 있는 화관을 쓴 새초롬한 표정의 남자. 그의 생일도 드러난다. 1976년 4월15일. 그렇다. 이날은 유튜버이자 예능PD로 유명한 나영석PD의 생카가 열린 날이었다. 그의 화관을 쓴 ‘킹 받는’ 콘셉트 사진에는 ‘아워 땡 보이(Our Ddang Boy)’ 즉, ‘우리의 땡보이’라는 문구도 내걸렸다.



도대체 이 남자 왜 이러는 걸까. 기존 대중문화의 시선, 정확히 말하면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보면 그의 행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의 시선에서는 이 남자, 굉장히 귀여운 아저씨다.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하는 일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고, 심지어 이를 방송 프로그램으로도 풀어낸다. 그것도 모자라 유튜브에서 선언하고, 실제 오프라인에서 이루기도 한다. PD는 늘 카메라 뒤에서 지켜만 보는 사람이라고? 적어도 이 ‘땡보이’ 앞에서는 그러한 기존의 명제는 가볍게 허물어진다.

나영석PD는 대한민국 예능계에서 입지전적인 전적을 보유한 연출자이자 현재는 너무나도 쉽고 가볍게 스스로를 도구화하고 실험체화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프로그램은 tvN을 위시한 방송 채널에서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십오야’는 2019년 5월16일 개설 이후 현재는 구독자 630만명을 자랑하는 ‘매머드 채널’이 됐다. 흔히 TV와 유튜브 예능의 문법은 다르고, 그 접근법이 틀리다고 하는데 이 역시 나PD의 위엄 앞에서는 사르르 녹는다.



사진=채널 십오야 채널 영상 캡처사진=채널 십오야 채널 영상 캡처
나영석PD는 2001년 KBS 예능PD로 입사했다. 초반 조연출 시절을 거쳐 2000년대 중반 대한민국 리얼 버라이어티의 새 장을 연 ‘1박2일’ 시리즈로 스타 PD의 반열에 오른다. 그가 이 당시 펼쳤던 재미의 포인트는 ‘예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었다. 기존 어느 정도 설정이 있는 상황을 좋아했던 예능 PD와 달리 나PD는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을 곧바로 예능적으로 적용하곤 했다. 출연자와 제작진의 실랑이 가운데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1박2일’이었다.

프로그램의 국민적인 성공 이후 그의 미래는 모든 방송가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던 와중 2012년 갑자기 당시에는 작은 케이블 채널 중 하나였던 tvN으로 전격 이적한다. 당시 어마무시한 권한이 있었던 지상파 PD를 벗어나 케이블 채널로 향했던 그의 선택에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그는 ‘꽃보다 할배’를 비롯해 ‘삼시세끼’, ‘신서유기’, ‘강식당’, ‘알쓸신잡’, ‘뿅뿅 지구오락실’, ‘서진이네’ 등 히트작을 줄지어 냈다.


그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열려 있었으며 언제나 유연하게 적용이 가능했다. 특히 tvN으로 이적한 이후 이러한 특징이 돋보였는데 ‘꽃보다 할배’를 하다가 이를 약간 변주해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을 만들었다. ‘삼시세끼’도 여러 편으로 분화했고, ‘신서유기’를 하다가 생각난 멤버들의 캐릭터를 갖고 식당을 운영시켜 ‘강식당’을 만들었다. ‘서진이네’ 역시 ‘윤식당’에서 부사장으로 욕망을 숨기던 이서진의 캐릭터를 키운 ‘스핀 오프’에 가깝다.

그런 그가 최근 ‘흑화’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흑화’란 뭔가 욕망지향적이고 속세지향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더니 먹방과 술방 등 지금 인플루언서들이 주로 하는 콘텐츠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출장 십오야’라는 게임 콘텐츠를 통해 인연을 맺은 세븐틴과 여행을 떠나 ‘나나투어’를 개장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생카’가 유행하자 생카까지 복사해 자신의 프로그램에 넣어버리는 ‘괴물같은’ 확장력을 보여준다.

나PD의 이러한 흑화에는 ‘침착맨’으로 유명한 웹툰작가 출신 방송인 이말년의 존재가 컸다. 유튜브를 2019년 시작했지만, TV의 작법으로 고만고만한 콘텐츠를 만들며 부침을 겪고 있던 그는 먼저 웹방송의 세계에 뛰어든 침착맨에게서 ‘그다지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화두를 얻는다. 꼭 예능PD처럼 모든 걸 갖춰놓고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PD는 그냥 식탁에도 종이 몇 개 붙여놓고 지인을 불러 근황 토크쇼 ‘나영석의 나불나불’을 시작했고, 이는 클립마다 200~300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올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tvN사진=tvN
그러자 ‘확장의 달인’ 답게 ‘나영석의 와글와글’ ‘나영석의 지글지글’ 등 본격적으로 자신을 인플루언서화하는 기획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사실 ‘1박2일’ 연출 당시부터 카메라의 앞뒤를 오가며 ‘제7의 멤버’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누구와 비교될 수 없는 나영석PD의 정체성과 연출력은 지상파에서 케이블, 다시 케이블에서 유튜브 등 매체가 바뀌고 분화되도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데뷔가 20년이 넘은 연출자가 이렇게 진화하긴 실제로 굉장히 쉽지 않다. 그의 변화 속도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수치이다가 이제는 동년배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인플루언서 나영석이 어떤 일을 꾸밀지 알 수가 없다.

채널이 브랜드가 되고, 프로그램이 브랜드가 되던 시대에서 나영석은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거의 최초의 예능PD가 됐으며, 20년을 쌓아온 서사가 MZ세대의 즉흥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만나면서 거침없이 분화하고 있다. 지금 시대에서 예능PD 아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살아남는 법. 나영석PD의 흑화는 그 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 인간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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