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십오야 SNS 캡쳐
이날 열린 ‘생카’의 특징은 한 유튜버, 인플루언서 아무튼 유명인의 생카였다는 것이다. 카페 창문을 꾸미고 있는 화관을 쓴 새초롬한 표정의 남자. 그의 생일도 드러난다. 1976년 4월15일. 그렇다. 이날은 유튜버이자 예능PD로 유명한 나영석PD의 생카가 열린 날이었다. 그의 화관을 쓴 ‘킹 받는’ 콘셉트 사진에는 ‘아워 땡 보이(Our Ddang Boy)’ 즉, ‘우리의 땡보이’라는 문구도 내걸렸다.
나영석PD는 대한민국 예능계에서 입지전적인 전적을 보유한 연출자이자 현재는 너무나도 쉽고 가볍게 스스로를 도구화하고 실험체화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프로그램은 tvN을 위시한 방송 채널에서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십오야’는 2019년 5월16일 개설 이후 현재는 구독자 630만명을 자랑하는 ‘매머드 채널’이 됐다. 흔히 TV와 유튜브 예능의 문법은 다르고, 그 접근법이 틀리다고 하는데 이 역시 나PD의 위엄 앞에서는 사르르 녹는다.
사진=채널 십오야 채널 영상 캡처
프로그램의 국민적인 성공 이후 그의 미래는 모든 방송가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던 와중 2012년 갑자기 당시에는 작은 케이블 채널 중 하나였던 tvN으로 전격 이적한다. 당시 어마무시한 권한이 있었던 지상파 PD를 벗어나 케이블 채널로 향했던 그의 선택에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그는 ‘꽃보다 할배’를 비롯해 ‘삼시세끼’, ‘신서유기’, ‘강식당’, ‘알쓸신잡’, ‘뿅뿅 지구오락실’, ‘서진이네’ 등 히트작을 줄지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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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열려 있었으며 언제나 유연하게 적용이 가능했다. 특히 tvN으로 이적한 이후 이러한 특징이 돋보였는데 ‘꽃보다 할배’를 하다가 이를 약간 변주해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을 만들었다. ‘삼시세끼’도 여러 편으로 분화했고, ‘신서유기’를 하다가 생각난 멤버들의 캐릭터를 갖고 식당을 운영시켜 ‘강식당’을 만들었다. ‘서진이네’ 역시 ‘윤식당’에서 부사장으로 욕망을 숨기던 이서진의 캐릭터를 키운 ‘스핀 오프’에 가깝다.
그런 그가 최근 ‘흑화’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흑화’란 뭔가 욕망지향적이고 속세지향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더니 먹방과 술방 등 지금 인플루언서들이 주로 하는 콘텐츠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출장 십오야’라는 게임 콘텐츠를 통해 인연을 맺은 세븐틴과 여행을 떠나 ‘나나투어’를 개장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생카’가 유행하자 생카까지 복사해 자신의 프로그램에 넣어버리는 ‘괴물같은’ 확장력을 보여준다.
나PD의 이러한 흑화에는 ‘침착맨’으로 유명한 웹툰작가 출신 방송인 이말년의 존재가 컸다. 유튜브를 2019년 시작했지만, TV의 작법으로 고만고만한 콘텐츠를 만들며 부침을 겪고 있던 그는 먼저 웹방송의 세계에 뛰어든 침착맨에게서 ‘그다지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화두를 얻는다. 꼭 예능PD처럼 모든 걸 갖춰놓고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PD는 그냥 식탁에도 종이 몇 개 붙여놓고 지인을 불러 근황 토크쇼 ‘나영석의 나불나불’을 시작했고, 이는 클립마다 200~300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올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tvN
이미 데뷔가 20년이 넘은 연출자가 이렇게 진화하긴 실제로 굉장히 쉽지 않다. 그의 변화 속도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수치이다가 이제는 동년배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인플루언서 나영석이 어떤 일을 꾸밀지 알 수가 없다.
채널이 브랜드가 되고, 프로그램이 브랜드가 되던 시대에서 나영석은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거의 최초의 예능PD가 됐으며, 20년을 쌓아온 서사가 MZ세대의 즉흥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만나면서 거침없이 분화하고 있다. 지금 시대에서 예능PD 아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살아남는 법. 나영석PD의 흑화는 그 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 인간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