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연락하는 팀장님, 과태료 13만원"…한국도 적용한다면?[글로벌 미생(美生)]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24.04.13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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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전 세계 직장인의 애환은 다른 듯 닮았더군요. 우리보다 먼저 겪은 사례, 또는 다른 방식의 해법을 찾는 '글로벌 미생'의 이야기를 쏙쏙 찾아 다룹니다. 궁금증을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보내주시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로 전환했던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또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재택근무를 할 땐 출·퇴근이나 점심시간 등에 제약이 덜한 대신 시시때때로 날아드는 직장상사의 이메일·문자메시지·메신저·전화 등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사무실 출근을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근무시간 내내 대면한 채 업무를 하는데 퇴근 후까지 상사의 연락을 받으면 업무의 연장으로 느껴진다고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퇴근 후 직원에게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는 더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퇴근 후엔 정말 직장 상사의 전화를 안 받아도 되는 걸까.

미 캘리포니아 '퇴근 후 연락하면 과태료 100달러' 추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회에는 근무시간 외에 직원에게 연락한 고용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법'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캘리포니아주 내 모든 고용주와 근로자는 고용계약을 맺을 때 근무시간과 휴무시간을 명시하는 한편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계획서를 작성해 공개해야 한다. 이를 어기고 퇴근시간 이후나 휴일에 연락했다가 걸리면 캘리포니아 노동위원회가 이를 조사해 위반 1회당 최소 100달러(약 13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또 이 법안은 고용주가 직원에게 지정된 시간을 제외하고 통신을 끊을 권리를 보장하는 직장 정책 수립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정의하고 직원이 고용주의 통신을 무시할 권리가 있음을 보장토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직원들에겐 법안 조항 위반 사항에 대해 노동청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근로자 개개인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했다가 불이익 받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맷 헤이니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사진=맷헤이니 의원 홈페이지맷 헤이니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사진=맷헤이니 의원 홈페이지
법안을 발의한 맷 헤이니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퇴근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이의 생일 파티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기로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며 "회사 걱정이나 업무 응대 없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하는 건 미국이 처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17년 프랑스에서 처음 채택된 '연결되지 않을 권리법'은 현재 호주, 아르헨티나, 벨기에, 콜롬비아, 그리스, 멕시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13개 국가에서 이미 제정됐다.

이에 따라 해당 국가들은 원격근무를 할 때 노동자와 회사가 '서면합의'를 통해 휴식시간과 연결차단권을 규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행방법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으로 정하되 단체협약이 없는 경우 사용자와 노동자대표의 합의로 정한다. 재택근무 직원에게도 연결차단권을 보장해야 한다.

독일에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법률은 따로 없다. 하지만 노동시간 외에 별도의 디지털 연락을 금지하거나 연락 횟수를 제한하는 정책은 운영하고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예외'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결되지 않을 권리법'에 대한 비판이 없는건 아니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이 법이 기존의 초과근무법과 어떻게 상호작용 할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형태의 근무가 생겨나면서'비전통적인 시간'에 근무하는 조직의 관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들의 '비근무 시간'은 본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물론 법안에는 예외조항이 있다. △긴급상황 △24시간 내 일정 변경이 필요한 경우 △고용자와 근로자간 합의에 다른 장기근무 △당직시간이 보상되는 경우 △단체교섭 협약으로 인한 추가근무 등이다.

긴급·비상 사태와 관련해선 '직원, 고객 또는 일반 대중을 위협하거나 운영을 중단하거나 물리적 또는 환경적 피해를 초래하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의 또한 애매한 면이 있다. 회사 관리자가 부득이하게 퇴근한 직원과 통화하려면 "누군가를 위협하는가", "예상치 못한 상황인가", "회사 운영을 방해할만한 상황인가", "물리적 환경적 피해를 초래하나"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할 판이다. 노동청과 법원도 '예기치 못한 일', '긴급 상황' 등의 범주를 일일이 정의·열거하고 변경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선 업종·직급별 차등 적용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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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카톡 금지법'이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여러차례 발의됐다 사라졌다. 최근에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문가 테스크포스(TF)를 꾸려 근로자들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는 긍정적이지만 근무시간과 비근무시간으로 기준을 이분법화했다간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는 "무조건적인 근무시간 외 통신 금지법은 업종별·직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포괄적 제재"라며 "작업장 환경에 따라 다른 잣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리더십 컨설팅회사 RHR 인터내셔널의 수석파트너 스타렉은 "직원들의 직급마다 다른 책임을 갖고 있으며, 업무의 양과 시간에 대한 요구도 다를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모든 사람의 동일한 합의는 어려운 만큼 하나의 법으로 만들어 집행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직급 체계가 명확한 한국은 처음 '카톡금지법' 논의가 시작됐을 때도 연결 금지 직원의 범위를 놓고 의견이 맞섰다. 예컨대 임원들끼리는 심야 연락을 해도 괜찮은지, 상사가 직원에게 연락하는 것은 제한하면서 후배가 상사에게 업무상 연락하는 것은 허용하는 것이 맞는 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프랑스는 근무와 퇴근의 중간 상황인 '호출 대기'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 시급을 보상하는 방식으로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호출 대기 시간은 원칙적으로는 휴식 시간이지만 회사의 전화나 메시지 등으로 연락받고 업무 활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상호 협의가 돼 있다. 직원이 연락을 받아 업무를 할 경우 해당 시간은 노동으로 간주해 보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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