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땜질 처방만 십수년…이젠 표 챙기느라 미뤘던 숙제할 시간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박광범 기자, 세종=유재희 기자, 세종=최민경 기자 2024.04.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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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포스트 총선 (上)

편집자주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수많은 정책공약이 나왔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부족했다. 진영논리와 정치공학 속에서 외면했던 총선 이후 과제들을 살펴봤다.

"구조개혁 민생토론회에 나서자"…'총선의 시간' 이후 과제들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사진=(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사진=(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치열했던 총선이 막을 내렸다. 국민들은 앞으로 4년을 이끌 미래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우리 정치사의 한 장은 그렇게 채워졌다.

여의도를 향했던 시계(視界)는 이제 우리 사회 곳곳으로 이어진다. 미뤄놓은 과제가 쌓여 있다. 4년을 넘어 10년, 20년 후 미래를 선택할 시간이다. 연금·교육·노동 분야부터 의료까지 눈에 보이지만 외면했던 구조개혁 과제를 풀지 못하면 장밋빛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경제교육단체협의회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20차례 이상 민생토론회를 진행했는데, (총선 이후) 구조개혁에 대한 민생토론회도 해야 한다"며 "전선을 길게 늘여선 곤란하니 차근차근 진행해 하나라도 일단락을 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3대 구조개혁 과제는 연금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이다. 어느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국민적 관심사가 큰 연금개혁은 정부안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부가 새로운 국회와 온전히 떠안아야 할 과제다. 교육개혁과 노동개혁도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지 못했다. 여기에 의료개혁이라는 시대적 화두까지 부상했다.



반쪽·땜질 처방만 십수년…이젠 표 챙기느라 미뤘던 숙제할 시간
박 전 장관은 "큰 방향에선 다들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전략이나 단계적 로드맵에 대한 공감대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구조개혁) 민생토론회를 한다면 의료개혁부터 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당장 내년도 신입생의 진로와 직결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 일단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억원 전 기재부 1차관도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연금 체계의 경우 보장성을 높이면서 한편으로 방만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숙제를 해놓아야 한다"며 "노동개혁 역시 노후 보장이라는 안전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나락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전 차관은 하방 위험에 놓인 잠재성장률에 대해선 "산업 정책적인 측면에서 노동과 자본이 있는데, 노동의 질적으로 인재양성에 나서고 양적으로 여성과 청년, 고령층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며 "자본은 결국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분야에서 어떻게 선점할 수 있을지 계획을 잘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산업 정책을 책임진 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생태계 단위의 경쟁력 제고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첨단산업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기 때문에 생태계 차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들이 필요하다"며 "그래야만 첨단산업 자체의 경쟁력이 지속되고, 부가가치도 한국에 귀속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색 코뿔소'는 안보인 공약…구조개혁의 시간 다가온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 모습. 2023.6.12/뉴스1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 모습. 2023.6.12/뉴스1
연금개혁은 대표적인 '회색 코뿔소' 과제로 꼽힌다. 덩치 큰 회색 코뿔소가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지만, 위험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써 외면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연금개혁은 국민적 호응을 얻기 힘든 과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 표가 아쉬운' 여야는 연금개혁 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연금개혁 등 주요 구조개혁은 시기를 놓칠 경우 미래세대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요 연구기관들은 연금개혁이 1년 지연될 때 수십조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교육개혁과 노동개혁 등 산적한 과제가 많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 구조개혁 과제를 앞세웠지만 총선 기간에 사실상 잊혀진 과제로 전락했다.

인구감소로 잠재성장률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구조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진다. 총선 이후 구조개혁을 위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문가들의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구조개혁의 전제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점에서 그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연금개혁 경우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손을 대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 필요하다"며 "노동개혁은 우리 기업 활동에 발목을 잡는 것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어려움이 파생되고 결국 경제의 활력을 낮춘다는 걸 적극적으로 설명해서 공감대를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금개혁만 하더라도 최근 십수년 간 갈등의 시간만 보냈다. 연금개혁의 핵심은 보험료율 인상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9%로 정해진 이후 한번도 조정하지 못했다. 국민적 반감이 큰 탓이다.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연금개혁 정부안을 마련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사이 갈등만 커졌다. 소극적인 정부안도 많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현행제도를 유지하거나 '더 내고 더 받는' 구조의 연금개혁 정부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총 4개의 선택지를 국회에 제출해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10월 연금개혁 정부안을 냈지만 연금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험료율 조정 등 모수개혁안을 담지 않았다. 총선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부정하기 힘들다.

교육개혁은 늘봄학교 등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체계를 일원화하는 유보통합도 체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학개혁은 '글로컬대학' 외에는 장기적 호흡에서 내세울 만한 정책을 찾기 쉽지 않다. 노동개혁 역시 성과로 내세울 만한 정책과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외에도 구조적 문제가 산적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만나 "생산연령인구 감소 등 인구 위기가 현실화되며 잠재성장률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도 구조적 문제로 △노동 공급 감소 △글로벌 선도기업 부족 △통상환경 변화 및 중국 특수 소멸 △지방 인구 유출 등을 제시했다.

이억원 전 기재부 1차관은 "대외적으로 보면 통상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에 공급망이나 기술 패권 시대에서 입장을 잘 취해 우리의 이익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며 "사회 안전판과 잠재성장 등 두가지를 역동성이 잘 연결시켜 준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맞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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