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한 학술대회에서 일본 교수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높은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특히 신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대기업 간부들은 전쟁 중 책임을 져야 하는 사무라이 장수와 같은 상황에 놓인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는 할복(하라키리)을 통해 책임을 져야 했기에 신사업에 대한 도전을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본 스타트업 시장은 최근 10년간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사회인식 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지목하고 투자확대, 규제완화, 창업교육 강화 등 다양한 지원정책을 시행한다. 또한 과거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창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창업에 도전하는 엘리트 공무원이 늘었다.
특히 2020년 4월부터 '오픈이노베이션 촉진세금제도'를 통해 민간기업이 10년 미만 스타트업에 10억원 이상 투자하면 법인세를 25% 감면해준다. 일본 CVC는 재무적 이익보다 전략적 목표달성에 기여하는 투자에 집중하며 투자 후 경영 참여도가 낮은 편이다. 하지만 대기업 인프라를 활용한 기술적, 판매·경영지원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투자자로 이를 활용하고자 국내 스타트업들의 일본 진출 또한 늘었다.
반면 국내에선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규제 때문에 CVC 활성화가 저해된다. 정부가 2021년 대기업 일반지주회사의 CVC 설립도 허용하면서 CVC 설립이 다소 증가했다. 하지만 외부자금의 출자비율을 펀드당 40%로, CVC의 해외투자는 총자산의 20% 이하로 제한했다. CVC는 고령화하는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따라서 세제혜택 및 규제완화와 동시에 투명성 확보 및 책임강화를 통해 CVC 활성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