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전역 후 카일은 총성 없는 평온한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는 참전병사들을 돕는 활동에 나서며 건강한 삶을 회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2013년 자신이 돕던 PTSD 환자인 해병대 저격수 출신 에디 루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카일의 아내는 전쟁터에서 싸운 남편이 전쟁터 밖의 현실과 더 처절히 싸웠다고 말했다.
"끝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돌아왔을 때 모든 눈이 살인자를 보는 듯했죠. 누가 저를 보호해주죠? 모두 어디 있나요? 내 친구 램포드, 유쾌한 내 친구. 내 친구는 누구죠? 아무도 없어요. 난 친구가 필요해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 제주 서귀포시 감귤창고 화재현장에서 임성철 소방교가 순직했다. 올해 2월엔 경북 문경 냉동식품공장 화재로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한 해 동안 소방청 소속 소방관들이 사비로 지출하고 지급받지 못한 출장비만 5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열악한 처우 가운데 장비구입과 출장 등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한 예산지원마저 충분치 않은 탓에 소방관들은 생명과 함께 생계까지 희생한다.
참전용사와 독립유공자는 대부분 생활고와 병환에 시달린다. 참전용사증서와 무공훈장, 유공자증은 밥 한 끼와 바꿔 먹을 수도 없는 무용지물이다. 존경 없는 명예는 그들에게 멍에일 뿐이다. 명예에 합당한 존경과 진정성 있는 예우, 그리고 실질적 지원과 보상이 영웅들에게 필요하다. 군인, 소방관, 경찰 등 '제복에 대한 존경'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돼야 한다. 우리의 행복과 꿈은 영웅들의 희생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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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나이퍼'의 마지막 장면에선 크리스 카일의 실제 장례식 영상을 보여준다.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댈러스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 장례식이 진행되고 운구차가 도로로 나서자 시민 수만 명이 성조기를 흔들며 영웅을 추모했다. 자신들을 위해 삶 전체를 희생한 이에게 단 몇 분이나마 하루의 일부를 내어주며 존경과 감사를 보냈다. 얼마 전 방송인 이지혜씨가 순직 소방관을 위해 1000만원을 기부했다. 고 임성철 소방교의 동료라고 밝힌 이는 "가까운 동료가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겪어 스스로도 앞으로의 현장활동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이런 선행으로 잡다한 고민은 사라지고 할 일을 해야겠다는 명확한 신념이 생겼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 명확한 신념에 이제 우리가 보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