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차례 민생토론회서 쏟아낸 240개 정책…'기재부의 시간' 왔다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4.04.1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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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포스트 총선 ③

편집자주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수많은 정책공약이 나왔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부족했다. 진영논리와 정치공학 속에서 외면했던 총선 이후 과제들을 살펴봤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일인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사진제공=기재부 /사진=(서울=뉴스1)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일인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사진제공=기재부 /사진=(서울=뉴스1)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막을 내리면서 이제 정부(기획재정부)의 시간이 돌아왔다. 올해 들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를 통해 쏟아낸 정책 과제들에 수반되는 비용 청구서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건전재정'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56조4000원 규모의 역대급 세수 결손까지 발생한 터라 수많은 정책 과제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정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주재한 민생토론회는 24차례로, 총 240개의 정책과제에 대한 후속 조치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1월4일 기재부의 2024년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첫 민생토론회였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일반분야 연구개발(R&D) 투자 증가분에 대한 세액공제, 상반기 신용카드 사용금액 소득공제 확대, 노후차 개별소비세 한시 인하, 상반기 전통시장 소득공제율 상향 등을 발표했다.



이후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비과세 혜택 확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위한 세제지원 확대 △늘봄학교 전국 확대 △출산지원금 전액 비과세 △32개 부담금 폐지·감면 등의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문제는 돈이다. 1~3월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정책들이 최소 수십조원 규모의 재정 지출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위기 속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의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다.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 1500억원 추가 투입 등 고물가 대응을 위한 재정 지출과 앞으로 깎아주겠다고 약속한 세금까지 감안하면 나라살림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유류세 인하와 같이 이미 깎아주고 있는 세수 부담도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5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72조2000억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2.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윤석열정부 집권 후 처음으로 재정준칙을 지킬 것이라는 예상이다.

민생토론회발 과제만으로도 이같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정치권의 총선 공약 청구서까지 더해지면 정부 재정건전성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최근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고민의 맥락으로 읽힌다.

기재부는 지금까지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신규 정책과제 재원 조달방안과 필요 재원규모에 대해선 최대한 말을 아껴왔다. 정책 시행에 따른 세수 감소 등 재정건전성 우려 지적에 대해선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이 최근 확정되고 각 부처들로부터 예산 요구안을 받는 등 2025년도 예산 편성 절차가 본격화하면서 '선거 이후'에 대한 고민이 현실로 다가왔다.

검토가 아닌 결론을 내릴 시점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장 다음달 열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시작으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세제개편안 발표 △2025년도 예산안 확정 과정에서 민생토론회에서 제시된 정책 과제들의 현실화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주요 정책스케줄/그래픽=김다나총선 이후 주요 정책스케줄/그래픽=김다나
다만 정부 재정상황을 고려했을 때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정책을 모두 이행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무엇보다 국가 재원의 효율적 배분과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정책을 세워야 하는 기재부가 민생토론회 형식 아래에선 대통령실이 던진 숙제를 수습하는 데 급급했단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정치의 시간이 지나고 기재부의 시간이 돌아온 만큼 기재부의 존재가치를 보여줘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정권이 재정을 많이 써 재정건전성을 악화시켰다면 이번 정권은 감세로 세수를 줄여 건전성이 악화되는 문제를 발생시켰다"며 "기재부가 추가적으로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감세 정책을 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기 때문에 민생토론회에서 나온 많은 이야기들을 모두 수용했다간 재정이 감당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표된 정책들 중에선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이뤄줘야 할 것"이라며 "특히 선거가 끝나 정치적 계산법에서도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민생정책 실현에 초점을 맞춰야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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