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vs 의협, 1차 의료 공백 해소 주체 두고 '핑퐁'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4.04.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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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한의사가 메꾸자"vs "응급환자도 받아라" 날선 공방

한의협 vs 의협, 1차 의료 공백 해소 주체 두고 '핑퐁'


의료 공백의 '불똥'이 한의사와 의사들의 진료 현장으로 튈 태세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이 "한의사를 활용하면 현재의 의료공백을 충분히 메꿀 수 있다. 양의사를 견제하고 경쟁하며 카르텔을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가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공문을 보내면서다. 여기에 이달 29일부터 6가지 질환에 대한 첩약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의료 공백을 두고 한의사와 의사 간 자리다툼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8일 대한한의사협회 김석희 홍보이사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지난 5일 의협이 보낸 공문을 보면 의협이 윤성찬 회장의 취임사 내용을 곡해한 것으로 어이없는 내용"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의사 집단의 사직 등 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에 대해 한의사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선 한의협이 의협이 아닌 정부와 논의할 사안"이라며 "의협과 대면하지 않는 게 격에 맞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4일 서울 강서구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제45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취임식에서 윤성찬 신임 회장은 1차 의료에서 (정부가) 한의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도 보건지소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 존재하는 보건진료소엔 간호사·조산사 등이 보건 진료 전담 공무원으로서 일정 교육과정을 거친 뒤 감기, 소화기 장애,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치매와 두통 등 신경과 영역에 이르기까지 1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다"며 "증상에 따라 혈압약·당뇨병약을 포함해 89개 품목의 양방 의약품을 처방하고 있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제42대 회장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5일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에게 보낸 공문. /사진=임현택 페이스북.대한의사협회 제42대 회장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5일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에게 보낸 공문. /사진=임현택 페이스북.
하지만 그다음 날 의협의 '역공'이 이어졌다. 제42대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대한한의사협회 신임 회장 취임식 보도 관련 협조 요청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윤성찬 한의협 회장에게 보내며 "(의료 공백을 해소하겠다는데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현재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세부적인 대책 방안과 구체적으로 응급환자, 중환자, 수술환자의 전원이 가능한 한의원과 한방병원, 한의과대학 부속병원을 명단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 회(한의협)의 대책방안에 대해 진중하게 협의하기 위해 (한의협 회장과의) 만남을 요청한다"며 "면담 일자를 조속히 회신해달라"고도 했다. 이 공문은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이 5일 자신의 SNS에 올려 공개됐다. 임현택 당선인은 공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석희 한의협 홍보이사는 "1차 의료란 건강을 위해 환자가 최초로 접촉하는 의료를 말한다"며 "수술환자, 중환자,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 공백을 한의사들이 메꾸겠다고 언급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의사들이 진료를 축소해 국민의 의료 공백이 생긴 만큼 한의원, 한방병원, 한의대 부속병원에서 자발적으로 평일 야간과 공휴일의 진료 시간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한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보고 어느 질환이 의심되는지, 어느 진료과에 가는 게 좋은지, 상급종합병원에 가야 할 정도인지, 아니면 한의학으로 첩약·뜸·침·추나요법 등 한방 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환자에게 권유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한의사들이 언급한 1차 의료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또 혈당·혈압 측정과 한방 치료를 통한 만성질환 관리도 이미 한의원에서 해오던 일이어서 의료 공백으로 방치된 만성질환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제45대 회장 당선인은 2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산하 한방대책특별위원회를 해체하라고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펼쳤다./사진=한의협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제45대 회장 당선인은 2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산하 한방대책특별위원회를 해체하라고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펼쳤다./사진=한의협
게다가 이달 29일부터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이 실시되면서 환자들이 △월경통 △알레르기성 비염 △기능성 소화불량증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 △요추 추간판 탈출증(허리 디스크) 등 질환 6종에 대한 첩약을 건강보험이 적용된 값에 처방받을 수 있게 돼 의협과의 신경전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석희 한의협 홍보이사는 "이들 첩약은 표준임상진료지침에서 권고 등급 B 이상을 받은 것만 적용된 것"이라며 "그만큼 연구 결과를 통해 그 효과가 객관적으로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허리 디스크 환자가 첩약을 먹으면 해당 부위 통증뿐 아니라 디스크로 인한 저림 증상까지 완화한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임기를 시작한 윤성찬 한의협 회장은 최근 일부 의원급에서 주 40시간까지만 진료하겠다며 진료 축소를 선언한 데 대해 "의료인으로서 진료를 무기로 국민에게 윽박지르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1차 의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환에 대한 한의원의 치료 효과, 질환 관리는 양방의원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라고도 자신했다.

반면 오는 5월 1일부터 3년간의 임기를 시작하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제42대 회장 당선인은 '건강 보험에서의 한방 분리'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임현택 당선인은 "건강보험에서 한방보험을 분리해 한방과 현대의료(양방)을 완전히 이원화할 것"이라며 "양·한방 협진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더 이상 한방이 현대의료를 흉내 내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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