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나는 왜 작은 일에 분노하는가

머니투데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2024.04.0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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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필자의 일상습관 중 하나는 저녁식사 후 아내와 함께 동네 한 바퀴를 걷는 일이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을 지나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남성사계시장에 가면 식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소공상인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흥정하는 주민들을 보면 삶의 의지가 생긴다.

그러나 최근 소시민이 겪는 삶의 비애를 느꼈다. 대파 1단이 5000원 하는 고물가를 원망하면서 몇 차례 대파를 사지 못했다. 2500원대로 떨어지지 않는 대파가격에 분노했다. 그래서 때마침 "대파가격이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발언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파 챌린지'에 공감했다.



하지만 뒤늦게 '대파 챌린지'가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하면서 윤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거짓선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왜 작은 일에 분노하는가'로 자성하게 됐다. 왜냐면 2500원이 오른 대파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수억 원의 시세차익에 따른 집값폭등으로 수백만 세입자를 울린 양문석 후보(안산갑)의 부정의와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외면할 뻔했기 때문이다. 소시민의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할 뻔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정말 대파 1단의 가격을 875원으로 알았을까. 지난 3월18일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했을 때 현장대화를 확인해 보면 농산물 할인행사에 가서 할인가격이 합리적이라고 말한 윤 대통령도 해당 대파가격이 특별히 싼 가격임을 인지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원래 가격은 지금 한 1700원 정도 해야 되는데 저희가 875원에 이제 판다"고 염기동 농협유통 대표가 말하자 윤 대통령은 가격표가 붙은 대파를 살펴보면서 "근데 여기 지금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거 아닌가"라고 응답했다. 이에 "5대 대형마트가 다 한다. 한창 비쌀 때는 3900원까지 했다"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말하자 윤 대통령은 "저도 시장을 많이 가봐서 대파 875원이면 그냥 합리적인 가격이라 생각된다"고 응답했다.

양문석 후보는 2020년 서울 잠원동 아파트를 31억원에 매입하면서 11억원의 편법대출을 받았다. 15억원이 넘는 주택엔 대출이 금지되자 사업자금이란 거짓 명목으로 대출을 받았다. 그럼에도 양 후보는 "사기대출이라면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나의 대출로 피해자가 생겼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2030세대와 중도층은 '부모찬스'로 대학생이 11억원의 대출을 받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현실에 큰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가 있다. 이 시는 수억 원의 집값폭등과 같은 부정의와 불공정에 크게 분노하기보다 2500원 오른 대파가격을 따지는 소시민의 옹졸한 분노에 경각심을 준다. 선거철이면 '정치를 외면한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격언이 회자된다. 결국 화가 난 유권자들이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면서 저질스러운 정치꾼을 몰아내는 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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