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재계 단체가 탄소가격제 지지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24.04.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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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서는 탄소배출에 효율적인 가격을 책정하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덴마크의 한국경제인협회' 격인 덴마크산업연합(DI)의 에너지 부문 대표의 말이다. 트롤스 라니스 DI 에너지 부문 대표는 지난달 인터뷰 중 탄소가격제가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의 배출권거래제(ETS)를 지지한다"고 한 그는 덴마크 정부가 2025년부터 자국 기업에 부과할 탄소세도 같은 맥락에서 옹호했다.

얼마 후 게오르크 슈미트 주한 독일대사 역시인터뷰에서 탄소가격제가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독일 정부가 자국 제조업체들의 탈(脫)탄소화를 위해 철강 등 부문별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는 정부가 일일이 챙기는 방식(micromanaging) 보다 탄소배출에 가격을 매기는 게 경제적으로 강력한 수단이라 했다.



탄소가격제는 온실가스 배출에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제도다. 배출에 직접 비용을 물리는 탄소세, 배출양을 제한하면서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는 시장 매커니즘을 더한 ETS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식이다.

라니스 대표는 EU가 2005년부터 시작한 EU ETS가 현실에서 탄소가격제 효과를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도입 시 유럽 재계의 반발에 부딪혔던 EU ETS가 시행 20년 후 회원국 재계 단체에서 얻은 평가다. 반면 도입 10년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ETS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팬데믹 직전 톤당 4만원대까지 올랐던 배출권 가격이 급락해 현재 8000원대에서 횡보중이다. 기업들이 굳이 저탄소 공정에 투자할 유인을 주지 못하는 가격이다. 한 대기업 관련 업무 담당자는 "배출권 가격이 낮아 내부적으로 탄소배출 감축 투자를 제안할 명분이 없다"고 했다. 정부가 가격 하락 원인으로 꼽혔던 배출권 이월 제한을 완화하는 등의 조치에 나섰지만 제도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한 조치가 더 필요해 보인다.



그 방향성은 인터뷰 중 탄소가격제를 지지하는 전제로 거론된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탄소배출 감축에 돈이 든다는 점이다. 이는 민간이 탄소감축을 할 유인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온실가스 배출 비용이 온실가스 저감에 쓰이는 비용 보다 커지면 기업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연구나 설비 투자 등에 돈을 쓸 유인이 생긴다. 다음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일한 묘책이 없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자국 상황에 맞게 탄소세·ETS 등의 규제와 지원책을 조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라니스 대표는 탄소가격제가 "명확한 투자 신호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했다. 탄소배출을 덜 하는 기업이 유리해지는, 믿을 수 있는 규칙으로서 ETS가 작동해 왔다는 얘기다. '규제 대 지원책'이란 이분법을 벗어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제도가 기업들로부터 지지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기업에 준 무상 배출권 양이 적절한 지, ETS 외 더 큰 틀의 정책 조합이 가능한 지 등을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

권다희 산업1부 차장권다희 산업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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