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외국인 회장님 규제, 안갯속"...'동일인 지정 요건' 불발 위기

머니투데이 세종=유재희 기자 2024.04.0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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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동일인 판단기준에 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설명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2023.12.27./사진= 뉴시스 제공[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동일인 판단기준에 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설명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2023.12.27./사진= 뉴시스 제공


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인에 대한 동일인(총수) 지정 기준을 구체화하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좌초 위기에 놓였다. 관련 시행령 개정안이 법제처·규제심사에서 발목이 잡힌 탓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외국인이더라도 예외 요건에 해당하면 '법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요건을 충족지 못하면 '자연인'이 총수가 된다.

법인이 총수로 지정되면 사익편취 등 규제를 받지 않는 만큼 기업들의 관심이 컸다. 재계에서 법인 지정을 위한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시행령 개정이 늦춰지면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에 활용하지 못한다.



법제처·규제심사서 진통
5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의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마친 이후 법제처 심사·규제심사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총수로 지정하고 지정자료 제출 의무 등을 부과한다. 이때 규제를 적용하는 기업집단·계열사의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바로 '총수'다.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에서 국적과 무관하게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법인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조건'을 마련했다. △법인을 총수로 지정해도 기업집단 범위에서 자연인이 지배하는 집단과 차이가 없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경영 참여·출자도 없는 등의 경우다.

공정위가 개정안을 마련한 것은 그동안 외국 국적을 보유한 대기업 총수 및 친족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마땅한 지정 기준이 없다는 지적에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쿠팡 등 해외 국적의 실질적 지배자를 둔 기업집단의 경우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지정하고 있다. 자연인을 총수로 지정하고 있는 기업집단과 역차별 문제가 나왔던 이유다. 총수가 법인인 기업집단은 관련 법상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등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 시 적용 '난관'
다만 이번 개정안은 재계 등 이해관계자 반대에 부딪혔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들 일부가 법인을 총수로 지정받도록 요건을 완화해달라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지난 2월 초 입법예고를 마쳤지만 두 달 가까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당초 공정위의 계획은 올해 총수 지정 때 개정안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은 시행령 개정 절차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법제처가 개정안의 세부내용을 검토하고 있는데다 규제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야한다. 이미 총수 지정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른 점도 부담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에 대한 총수 지정 문제의 중심에 있던 김범석 쿠팡 의장에 대한 판단도 재차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앞으로 국내 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 가운데 해외 국적이 적잖은 점을 고려하면 지정 기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경쟁당국은 지난해 대기업 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며 △총수 △총수 배우자 △총수 2세 등의 국적 현황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총수가 외국 국적을 보유한 집단은 OCI(미국 국적), 배우자가 외국 국적을 보유한 집단은 7곳, 총수 2세가 외국 국적(또는 이중국적)을 보유한 집단은 16곳(31명)이었다. 향후 특수관계인의 경영권 승계 등을 고려하면 총수 지정 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규제심사·법제처 심사를 동시에 받고 있다"면서 "시행령 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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