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회사에서 생기는 일들[우보세]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24.04.08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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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 다니는 임산부 A씨는 최근 팀원들과 함께 기획안을 정리하다가 저녁 8시까지 근무를 했다. 임산부는 시간외 근로(연장근무) 및 야간근로(밤 10시 이후)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팀장은 "힘들면 들어가라"고 했지만 인사고과에 불리할까봐 선뜻 퇴근할 수 없었다.

#대기업 팀장 B씨는 직원들이 잇따라 육아휴직을 내 막내 신입사원과 둘이 일을 하고 있다. 30대 여직원 두명이 출산·육아휴직을 떠나고 40대 남직원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육아휴직을 낸 결과다. 회사에 충원을 요구했지만 "3명은 어렵고 1명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일과 육아가 양립 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정부가 출산·육아를 돕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도 그 제도가 현실에 안착되려면 기업의 경영 방식이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해결법은 임산부 뿐만이 아니라 전 직원이 연장근무를 하지 않도록 회사가 일의 양이나 기한을 조정하고,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해도 인력 운용에 문제가 없도록 채용에 여유를 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간 효율적인 인력 관리와 생산성 향상 등에 초점을 맞춰온게 사실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시작으로 2008년 금융위기, 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실물경기 위축 등 끊이지 않은 대내외 돌발 변수에 생존과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은 긴 호흡으로 인생을 계획할 수 여유보다는 무한 경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수)은 0.72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어 인구가 자연 감소하기 시작했고, 2040년에는 전체 인구의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될 전망이다. 2072년에는 국민 2명 중 1명이 노인이고, 유소년(0~14세) 비중은 6.6%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인구 쇼크에 놀라 정부도 저출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을 재점검하면서도 기업들의 참여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57%에 달해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출산율을 높이기 어려워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이달 중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합 대책에도 출산 장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세제 혜택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 평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지만 기업 스스로의 인식 변화도 절실하다. 젊은 인구가 줄면 기업이 채용할 직원도, 물건을 팔 소비자도 함께 사라진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이 인구에 달린 셈이다. 사내 출산 장려 정책과 기업 문화 혁신은 비용이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인정하고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다.
정인지 정책사회부정인지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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