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주총을 현명하게 활용한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 양재 사옥에서 제56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전기차 경쟁력 강화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환 본격화, 주주환원 정책 등을 밝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역대 최대 배당을 책정하는 등 주주환원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당일 주가가 4.56%(1만 1000원) 오른 25만 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게임업체 크래프톤 (252,500원 0.00%)은 주주친화 정책 기대감으로 올해만 30% 올랐는데 지난달 말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주가 부양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전반적인 주주환원을 위한 내부 검토, 주가 견인을 위한 인수합병(M&A) 계획을 드러냈다.
메리츠금융지주·이마트 주가 추이/그래픽=윤선정
최저 수준의 저PBR로 밸류업 열풍 초반 주목받았던 이마트 (62,300원 ▼700 -1.11%)도 하락세를 이어간다. 지난해 영업손실 469억원, 순손실 1875억원으로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향후 주주환원 정책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이마트의 주주환원 확대 여력은 제한적으로 평가된다. 이마트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7712억으로, 현 시가총액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속된 투자와 수익성 악화, 현금 유출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증권가에서도 이마트에 대한 시선을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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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나온다. 하지만 특정일에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쏠리는 행태가 계속되는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내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1주 소액주주들까지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전자주주총회가 하루빨리 법제화되고 선진화된 주주총회 문화가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3일 국회도서관과 한국예탁결제원(예탁원)이 발간한 '데이터로 보는 전자주주총회'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주주총회에서의 전자투표 행사율은 지난해 11.6%를 기록했다.
2015년 예탁원이 전자위임장 서비스를 실시한 이후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0% 대에 머무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주들의 주주총회 직접 참여가 힘들어 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덕분에 2022년 전자투표 행사율이 5.1%에서 10.1%로 올랐다.
엔데믹인 현재 다시 저조한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규모 인프라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부터 물리적으로 주주총회 참석이 불가한 소액주주들을 위해 기아 (114,400원 ▼500 -0.44%), LG전자 (96,500원 ▼1,000 -1.03%) 등 일부 대기업들은 온라인 동시 생중계를 진행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주주총회를 시청하면 정식적인 출석으로 인정되지 않고 실시간 투표가 불가능하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자투표가 가능하도록 기업들이 협력해 표준화된 공동 플랫폼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며 "온라인으로 주주총회가 생중계되는 등 긍정적인 시도가 나오지만 주주들이 물리적으로 주주총회를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어 한계가 있다"고 했다.
'주총 몰아치기' 현상도 반복된다. 대부분의 상장사들이 3월 21~31일에 집중적으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그 비율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3월 하순 주주총회 개최 회사수 비율은 △2019년 90.4% △2020년 82.6% △2021년 91.8% △2022년 92.3% △2023년 94.2%다. 개최요일도 금요일에 집중돼 있었는데 최근 5년간 상장사들의 31.9%가 금요일에 주주총회를 열었다.
이렇게 되면 여러 회사에 투자하는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문제가 생긴다. 지난해 전체 상장사 2670개 중 827개만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전자투표를 이용하고 있지 않기에 주총 몰아치기가 계속되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이 계속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전자주주총회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OECD 통계 등에 따르면 38개의 OECD 회원국, 11개의 비회원국 중 40개국에서 주주가 소집지에 출석하거나 전자통신수단으로 출석하는 하이브리드 주주총회 제도를 법제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전자주주총회 개최를 허용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지난해 10월 법무부는 실시간 출석,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전자 주주총회 시행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법안 통과 후 상장사들이 이를 정관에 반영하려면 최소 2026년부터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선진적인 주주총회 문화가 만들어져야만 소액주주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주총회에서 기업의 중요한 사업방향을 정하기에 모든 주주가 평등하게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주식 투자로 2000억원 대의 부를 일군 '주식농부'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최근 저서에서 "주주총회는 주주와 기업 모두에게 중요한 이벤트로 회사의 기본 조직, 경영과 관련한 중요 사안을 두고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 만든 자리"라며 "주주들이 주인으로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법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라고 설명한다. '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매년 5월 첫번째 주 토요일에 2박3일 일정으로 주주총회를 연다. 주총 전 박람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당일엔 워렌 버핏이 직접 참여해 안건에 대해 주주들과 자유롭게 질의응답을 나눈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주주총회가 많아진다면 투자 문화가 개선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