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K테니스 동호회의 재미있는 예절문화

머니투데이 양지훈 변호사 2024.04.0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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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테니스의 인기가 날로 높아진다. 하지만 테니스는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은 운동이기도 하다. 서울의 주요 테니스장 중 실내 정식 코트에서 레슨을 받으려면 대기 리스트에 올리고 1년 이상 기다려야만 한다. 실내 코트의 장점은 무엇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칠 수 있다는 것인데 실외는 비나 눈이 오면 레슨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우천으로 취소되더라도 다시 레슨일자를 잡아 보강하는 것이 아니어서 수강자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게다가 주말에 테니스장을 예약하는 것은 거의 복권 당첨과 같은 일이 돼버렸다. 한 주 전이나 한 달 전에 예약사이트가 열리는 인기 테니스장은 예약 시작 후 1초 컷이 다반사다.

그렇게 열심히 레슨을 받고 드디어 동호회에 나가면 초심자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장면은 K테니스 특유의 코트 예절일 것이다. 한 포털의 테니스카페에 친절하게 소개된 동호인 예절은 이렇다. "첫 서브를 넣기 전에 '안녕하세요' 하고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인사한다.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90도 굽혀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 (중략) '안녕하세요' 문화는 해외에는 없는 한국 동호인 테니스계의 독특한 문화로 알려졌다. 해외에서는 동전을 던져 코트를 정하고 시작하면서 'Good luck'(굿 럭) 정도 한다고 들었다."



한국의 프로(실업) 테니스선수들은 이런 인사를 하지 않으며 이는 오직 동호회에만 존재하는 규칙이다. 오히려 프로대회에선 게임 도중 상대방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거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 '경기방해'(Hindrance) 행위가 돼 페널티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동호회에 처음 가입해 게임을 배워나갈 때 느낀 어색함도 바로 서버가 리시버에게 하는 그 "안녕하세요"의 순간에 찾아왔다. 23.77m 건너편 코트에서 나의 공격을 받는 상대에게 "안녕하세요"라니 너무 어색하지 않은가. 서버가 인사하면 리시버는 어떻게 답하는 게 예의에 맞는가. 지난 경험에 따르면 여기에 K테니스 예절의 적절한 변용들이 생성된다. 이때 리시버가 연장자인 경우 별말 없이 고개만 까딱하거나 손만 들어도 예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반대로 리시버가 연소자라면 깍듯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에 더해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굽히는 동작까지 기대되는 것이다(네이버 카페에서 지적한 동작이 이것이다).



이 예절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존 테니스 동호회의 주류인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최근 새롭게 유입된, 기성질서에 의문을 표하던 MZ세대조차 K테니스 특유의 예절을 고분고분 따르는 현상은 흥미롭다. 그들 역시 이 좁은 땅에 옹기종기 모여 테니스를 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서브를 넣어야만 한다.

이 장면이 얼마나 어색한 것인지 판단하는데 조기축구회에서 페널티킥을 하는 키커가 골키퍼에게 손을 흔들거나 목례를 하면서 킥을 시도하는 장면을 떠올려봐도 좋겠다. 이제 K테니스에 익숙해진 나에게 "안녕하세요"는 빠지면 섭섭한 무언가가 돼버렸다. 에러를 범하는 경우 같은 팀 동료에게 "미안합니다"를 외치는 것도 우리 동호회 특유의 예절일 텐데 가끔 테니스코트에서 동호인들이 "파이팅"보다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다 쓸쓸히 퇴장하는 장면들은 낯설지 않다.

일부 동호인이 이 불필요한 예절을 코트에서 없애자고 주장하지만 아직은 소수의 목소리로 보인다. K테니스 예절이 어색하다고 해도 잘못됐거나 나쁜 것은 아닐 터다. 길 가다 타인과 마주치면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 서구의 그것과 비교할 때 우리 특유의 테니스코트 예절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 팀에게 패배한 후에도 인사를 열심히 한 경우 기분이 조금 덜 상할 수 있는 의외의 효과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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