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3시간, 폭풍 질문에 답변 척척…소액주주 앞에 선 CEO들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김창현 기자 2024.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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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달라진 주주, 변화하는 주총 ①

편집자주 주주는 기업의 소유자이자 회사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인 주주총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입니다. 이런 의미와 달리 그동안 주주가 의사결정 권한을 쥔 사례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고 주주제안 안건이 통과되는 등 회사가 주주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주와 소통을 하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간 차이도 극명합니다. 주총의 변화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분석해보겠습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사장)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제22기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중장기 전략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조주완 LG전자 대표(사장)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제22기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중장기 전략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올해 LG전자 주주총회에는 최고경영자(CEO) 조주완 대표(사장)가 등장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사장이 주총 의장을 맡았지만, 올해는 조 사장이 의장봉을 잡았다. 조 사장은 헤드셋 마이크를 끼고 대본 없이 사업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주주들의 질문에 직접 답했다.

조 사장 외에도 사업본부장 4명과 최고재무책임자(CFO)·최고전략책임자(CSO) 등 C레벨 임원도 총출동했다. 고위급 임원이 주주와 소통을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마트홈 AI 에이전트' 등 새롭게 시도하는 혁신 제품을 소개하는 전시존을 마련해 주주에게 선보이고, 주총장을 방문하지 못하는 주주를 위해 처음으로 실시간 온라인 중계도 실시했다.



CEO가 마이크 들고 고위 임원 총출동…달라진 주총에 '호평'
LG전자가 올해 새로운 형식의 주주총회로 시장의 호평을 받았다. 물론 배당정책 확대 방안도 발표했으나 더욱 주목받은 건 주주와 소통하려는 변화였다. '열린 주총'을 표방하면서 등장인물부터 내용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조 사장은 전날 프레젠테이션 리허설에만 3시간을 소요할 정도로 주총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 사장은 주총장에서 "주주가치는 다소 소홀한 면이 있지 않았나 반성했다"며 "LG전자의 사업 전략과 계획을 투명하게 공유하려 했고, 앞으로도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77,500원 ▲800 +1.04%) 주총에서도 한종희 부회장(CEO)이 나서 '주주와의 대화' 시간을 이끌었다. 최대한 많은 주주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해 부족함 없을 정도로 시간을 할애했다. 주총은 9시에 시작해 오후 12시까지 3시간가량 진행됐는데, 대부분은 주주와 대화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동안 형식적으로 이뤄지던 주총에서 주주는 늘 조연 취급을 받았다. 주주의 질문은 받지 않는다고 못 박아 주총은 10~20분 만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주주를 주인공으로 대우하는 주총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태도 변화도 감지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라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하는 추세라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주와의 소통을 늘려간다는 점이 다르다.

HLB 주주연대 '주가행' 회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HLB 주주연대 '주가행' 회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업의 변화에 주주들도 화답하고 있다. HLB (111,200원 ▲1,800 +1.65%) 주총장은 팬클럽을 방불케 했다. 주주들이 '경축, FDA 신약 허가 임박', '우리 고니(진양곤 회장) 하고 싶은 거 다 해' 등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었고,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HBL은 2016년부터 매년 2회 주주 간담회를 개최하며 주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진양곤 HLB 회장은 "내가 투자자라고 가정했을 때 회사 의사결정권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것 같다는 고민에서 시작했다"며 "계열사 대표들에게도 주총 이후 반드시 설명회를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올해 주총 이후 주주 간담회에서도 2시간을 할애했다.


경호 인력 대동하고 주총장 멀리 잡고…'불통'에 뿔난 주주들

지난달 29일 셀리버리 정기 주주총회에 경호인력이 배치된 모습. /사진=셀리버리 주주 제공 지난달 29일 셀리버리 정기 주주총회에 경호인력이 배치된 모습. /사진=셀리버리 주주 제공
주주총회가 주주와 경영진의 소통의 장이 아닌 불통의 장으로 전락한 곳도 있었다. 코스닥 상장사 셀리버리 (6,680원 ▼2,850 -29.91%)는 지난달 29일 정기 주주총회에 경호 인력 40여명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주주들의 발언을 막기 위해서다. 일부 주주는 안건 심의와 표결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했으나 묵살됐다. 주총은 15분 만에 종료됐다.

셀리버리는 부진한 실적으로 2022년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조대웅 셀리버리 대표이사는 지난해 주주들에게 회사 정상화를 약속했으나, 2년 연속 감사보고서에서 '의견거절'을 받았다. 여기에 조 대표가 법인카드 사적 남용 의혹을 받으며 검찰에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셀리버리는 주주와 소통보다는 회피를 선택했다. 조 대표는 임시 주총장에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거나 정기 주총을 장소를 당초 예정된 곳에서 22㎞ 떨어진 곳으로 바꾸며 주주와의 만남을 피했다.

소액 주주들은 조 대표를 포함한 현 경영진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주총장을 일부러 멀리 잡아 소액주주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꼼수는 으레 있어 왔다"며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인식보다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정기주총을 개최한 또 다른 상장사에서는 발언하려는 주주를 퇴장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수십번 주주총회를 경험했지만, 발언하겠다는 주주를 퇴장시킨 건 처음"이라며 "주총에서 주주의 발언을 막은 건 주총 본연의 의미를 퇴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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