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구루루 굴러가는 당구공에서 '우주의 혼돈'을 봤다

머니투데이 박건희 기자 2024.04.0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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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광주과학기술원)

연구팀은 경기장 모양의 당구대에 존재하는 당구공의 양자역학적 움직임을 통해 어떤 물질이 양자 혼돈 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연구팀은 경기장 모양의 당구대에 존재하는 당구공의 양자역학적 움직임을 통해 어떤 물질이 양자 혼돈 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연구진이 당구공의 움직임을 통해 양자역학적 '혼돈(chaos)' 상태를 설명했다. 양자 혼돈의 본질을 규명해 우주의 초기 현상을 이해하는 건 물론 양자컴퓨터 개발에도 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GIST(광주과학기술원)는 김근영 물리·광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양자역학계가 혼돈 상태에 있는지 판단하는 방법을 '스펙트럴 복잡도(Spectral complexity)'를 통해 규명했다고 2일 밝혔다. 관련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D'에 '에디터 추천 논문'으로 선정돼 2월 27일 게재됐다.



고전역학에서 '혼돈'은 물체의 초기 조건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기만 해도 그 물체의 경로가 매우 크게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가장 유명한 예가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다.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미세한 바람이 폭풍우로 이어질 수 있듯, 작은 움직임이 예상치 못한 거대한 변화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의 '혼돈'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고전 역학적 혼돈에 대응하는 '양자역학적 혼돈'을 이해하는 건 물리학의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아직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은 난제다.



양자역학적 기본 원리는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불확정성 원리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확정된 값을 가질 수 없어, 두 상태 모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자 혼돈을 설명하려면 원자, 분자, 원자핵 등 양자화된 상태들이 갖는 에너지 값(에너지 준위) 사이의 간격을 측정해 통계적 분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조차도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물질의 움직임까지 포괄할 수 없어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경기장 모양의 당구대에 존재하는 당구공의 양자역학적 움직임을 통해 양자 혼돈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활용한 방법이 '스펙트럴 복잡도'다. 스펙트럴 복잡도는 양자화된 상태들이 갖는 에너지 값을 분석해 움직임의 복잡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정의하는 양이다.

연구팀이 제시한 경기장 모양 당구대. R=a 이면 경기장의 모양은 원형이 된다. 고전역학적으로 이때 당구공은 혼돈 상태에 있지 않다. 반대로 R≠a 라면 당구장은 원형이 아니며, 따라서 당구공은 혼돈 상태에 있다고 본다. /사진=GIST연구팀이 제시한 경기장 모양 당구대. R=a 이면 경기장의 모양은 원형이 된다. 고전역학적으로 이때 당구공은 혼돈 상태에 있지 않다. 반대로 R≠a 라면 당구장은 원형이 아니며, 따라서 당구공은 혼돈 상태에 있다고 본다. /사진=GIST

고전역학에서의 당구공이라면, 당구대의 모양이 원형(R=a)일 때 혼돈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당구대가 원형이 아닐 경우(R≠a) 혼돈 현상이 일어난다. 반면 양자역학적 당구공일 경우 당구대의 모양이 원형일 때 스펙트럴의 복잡도가 크다. 원형이 아닐 때 스펙트럴 복잡도가 작다. 연구팀은 이같은 스펙트럴 복잡도를 통해 물질이 양자 혼돈 상태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양자 혼돈을 정의하고 그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이를 통해 소자 및 양자 컴퓨터의 개발은 물론, 양자 블랙홀에서의 양자 혼돈 연구를 통해 양자 중력과 우주 초기의 현상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 양자정보과학 인적기반 조성사업, GIST AI기반 융합인재 양성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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