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전문의가 소아 환자를? '동냥 진료' 시키는 처사…긍지 무너져"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2024.03.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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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진료거부로 인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는 2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진료거부로 인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는 2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언제까지 소아청소년과가 '동냥 진료'를 해야 합니까."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 개혁'을 바라보는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의정부 튼튼 어린이병원장)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지난 22일 의정부튼튼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과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수없이 요청했지만 엉뚱한 곳에 힘을 쏟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소아청소년과를 필수 의료가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진료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소아청소년과는 저출산, 지역소멸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출산율은 브레이크 없이 추락하고, 아이가 없는 곳이 늘어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수·지역의료 육성을 외치며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 등 필수 의료 패키지는 여전히 '미봉책'에 그친다는 게 최 회장의 판단이다.



특히, 최근 보건복지부가 인턴의 소아청소년과 최소 의무 수련 기간을 현재 2주에서 4주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연차별 수련 교과과정 개정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한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젊은 의사가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간판만 형식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소아 의료 공백을 메꾸겠다며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업무 범위를 일반 성인에서 소아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한 것 또한 "죽어가는 소아청소년과를 합법적으로 '동냥 진료' 시키는 처사"라고 봤다. 의료계에서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고 말하는 건 성인과 아이의 진단·치료 과정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일반 전문의가 소아 환자까지 보게 만든 건 소아청소년과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모르는 '탁상행정의 극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이 22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박정렬 기자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이 22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박정렬 기자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해서는 큰돈을 벌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초저출산 시대 아픈 아이를 한 명이라도 살려내는 데 대한 보람과 긍지로 진료에 나서는 게 지금의 전문의들"이라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제반 환경만 조성해줘도 충분한데 정부가 이를 왜 외면하고만 있는 것이냐"고 울먹였다.

그는 몰락하는 소아청소년과의 회생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경제적 자립'으로 꼽았다. 코로나19(COVID-19) 환자의 집중 치료를 지원했듯, 병실료와 수가를 보전해 의사가 진료량이 적어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약을 만드는 제약사에게 '동냥'할 필요가 없도록 사용량 연동 약가 인하제 등을 손 볼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최 회장은 "아이에게 쓰는 약들은 설령 필수적으로 써야 해도 매번 공급 부족에 시달린다. 제약사가 돈이 되지 않아 약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며 "아이가 원하는 시럽제는커녕 수년간 성인용 알약을 잘라서 처방해주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진정으로 소아청소년과를 필수 의료로 구분해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성인과는 별도로 아동 정책을 수립, 실행할 수 있도록 어린이건강지원법을 재정하고 보건복지부 내 전담부서를 조속히 신설해야 한다"며 "소아청소년과만의 '특혜'가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필수 의료를 살리고 출산율을 반등시킬 '대책'으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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