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
당초 TSMC의 유력한 퓨전 대상은 미국이었다. 자국 반도체 산업의 확대를 노리는 미국은 TSMC, 삼성전자 등 대형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은 물론 파운드리 사업을 하지 않던 인텔에게까지 반도체 투자를 종용했다. TSMC는 즉각 미국 애리조나주에 53조원을 투입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와의 지리적 거리,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과 협력사 시너지 효과 등을 노렸다.
퓨전 대상을 일본으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대만과 가까워 대만 기술자를 구하기 쉽고, 숙련된 일본 기술자의 확보도 용이하다. 또 미국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한데다 일본 정부가 10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약속했다는 점도 장점이다. TSMC가 최근 준공식을 연 일본 구마모토 1공장의 현지인 엔지니어를 모집할 때 내건 평균 월급은 300~4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국내 업계는 지금도 대만에 비해 팹리스·디자인하우스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본보다는 소부장 경쟁력이 낮다. 특히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팹리스-디자인하우스-소부장의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점차 벌어지는 삼성과 TSMC 간 파운드리 격차도 취약한 생태계 탓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61.2%로, 삼성전자(11.3%)와 49.9% 차이가 있다.
새 경쟁자가 등장한다는 점도 껄끄럽다. 일본 라피더스는 TSMC와 협력해 2027년 2나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단(첨단) 공정인 2나노는 삼성전자가 TSMC를 제칠 무기로 꺼내든 카드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일본 반도체가 2나노 이하 공정을 우수한 수율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대만의 파운드리 기술력이 이식되면 공정 고도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