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늪에 금고 뚫린 K-바이오, 연이은 '상폐기로'…"투심 악화" 불안감

머니투데이 홍효진 기자 2024.03.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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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기업 감사의견 및 관리종목 지정 사례. /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바이오기업 감사의견 및 관리종목 지정 사례. /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상폐(상장폐지)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중소 바이오텍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R&D(연구·개발) 성과 부진, 감사보고서 의견거절, 자본잠식 등 상장유지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연이은 상폐기로에 올해를 '반등의 한해'로 보고 있던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투심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셀리버리 (6,680원 ▼2,850 -29.91%)는 지난해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에서 '감사 범위 제한 및 존속 능력 불확실성'을 이유로 '의견거절' 통보를 받았다. 앞서 지난해에도 의견거절을 받아 같은 해 3월부터 주식거래가 정지된 데 이어 이번에도 같은 통보를 받게 됐다. 감사의견거절은 상폐 사유다. 셀리버리는 지난 11일 완전자본잠식으로 상폐 사유가 추가됐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2018년 성장성 특례로 코스닥에 입성한 셀리버리는 신약 개발 기대감에 투자자가 몰리면서 한때 주가가 10만원을 웃도는가 하면 시가총액 2조원을 넘기며 코스닥 9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개발에 난항을 겪으면서 성과가 도출되지 않자 적자 늪에 빠져야 했다. 신약 파이프라인이었던 면역염증치료제 후보물질 'iCP-NI'에 대한 미국 임상 1상을 진행했지만 지난해 5월 회사 재정 악화로 중단해야 했다.

같은 날 감사의견거절을 통보받았다고 공시한 제넨바이오 (389원 ▼2 -0.51%)도 주식거래가 막혔다. 앞서 제넨바이오는 2018년부터 4년 연속 영업적자를 내며 2022년 관리종목으로 지정됐으나, 당시 기업 부담 완화 및 투자자 보호 목적으로 시행된 '퇴출제도 합리화' 상장 규정에 따라 해제된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영업적자가 이어지면서 증시 퇴출 위기에 놓였다.



카나리아바이오 (994원 ▲78 +8.52%)도 지난해 재무제표에 대해 감사의견거절을 받았다. 카나리아바이오의 자본잠식률은 지난해 말 기준 386.8%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난소암 치료제 후보물질 '오레고보맙'의 손상차손 때문이다. 카나리아바이오는 지난 1월 오레고보맙의 글로벌 임상 3상 중단 권고를 받으면서 대규모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임상 중단으로 무형자산 손상차손을 반영하는 등 재정 악화에 회사 자산 규모는 감사보고서 기준 2022년 2713억원에서 2023년 123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외에도 뉴지랩파마 (1,383원 ▼523 -27.44%) 역시 직전 해에 이어 이번에도 감사의견거절을 받았고, RNA(리보핵산) 치료제 개발사 올리패스 (509원 ▲3 +0.59%)도 지난 20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위기에 몰렸다.

중소 바이오텍들이 연이어 상폐 기로에 선 배경에는 자금 조달 사정이 뒤따른다.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는 사실상 자체 매출이 없다. 연구·개발, 임상시험 등에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실질적 성과를 내기까진 인내의 연속인 탓이다. 이에 기업들은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 등으로 외부 자금 조달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조차 원활하지 않다 보니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바이오 기업을 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회사 재정에 꾸준히 문제가 지적돼 온 기업들 뿐 아니라 임상 데이터도 좋고 탄탄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악화할 가능성도 보인다"며 "회사가 재무적으로 탄탄하지 않으면 기술이 있어도 소용없는데, 지금 시장은 몇몇 기업들이 전체 바이오 시총을 견인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기업의 내부 잡음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회사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이탈하는 연구원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파이프라인 2~3개를 개발 중이던 곳도 개수를 줄여 싱글 파이프라인만 내세우는 경우도 흔하다. 인력 충원이 안 되다 보니 (신약 개발) 진도를 나가지 못해 다음 투자를 못 받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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