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신약개발 성공 전초기지 병원의 역할과 중요성

머니투데이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2024.03.2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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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바이오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한다. 바이오 신약이 성공하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큰돈을 벌 수 있어서다. 그래서 누구나 하고 싶어 하고 성공할 수 있다며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글로벌 혁신 바이오 신약개발에 성공해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번 성공사례는 없다. 물론 언젠가는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런 성공을 할까. 첫째는 운이 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안 보일 만큼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제까지 결과들로 유추해볼 때 간단한 확인 정도의 검증실험만 하면 될 것 같은 경우도 막상 다음 단계로 전진하면서 실패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세포실험 단계에서는 너무나 잘나오던 결과가 동물실험에서는 재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물실험에서 약효가 검증되고 독성도 없어서 임상시험에 진입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들이 나와 최종 실패한 경우는 더 많다.



어렵고 성공 가능성이 낮고 성공하면 굉장히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에 이쪽 분야의 경험이 없는 분들이 더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 이 경우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고 웃지 못할 곤란한 상황도 많이 발생했다.

대학병원과 부속연구소가 있는 환경은 신약을 개발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진료현장에서 필요한 치료기술이나 약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환자로부터 연구에 필요한 검체들도 쉽게 확보할 수 있어 다른 연구소나 신약개발 회사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유리한 환경에 있다. 임상경험이 풍부하고 연구·개발경험이나 이해도가 높은 의사가 많다는 점 또한 큰 장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경험이 있거나 중계연구에 관심이 많은 의생명분야 PhD 교수들도 같은 공간에 있기에 인적 자원 역시 매우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우수한 환경을 바탕으로 신약개발 주제를 정한 뒤 팀을 구성하고 연구비를 마련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세상 거의 모든 신약은 대학병원에서 나왔을 것이다. 실제 이런 의견에 설득돼 정부는 거액의 국책연구비를 만들어 병원에 20년 넘게 지원했다. 병원 경영자들은 이런 말을 믿고 병원이 환자를 진료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신약개발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지원했다.



신약개발의 성공은 매우 험난하고 긴 기간을 필요로 하는데 운이 좋아서 개발한 신약이 임상시험을 무사히 통과한다고 해도 실제 임상에서 환자에게 많이 쓰일지는 또다른 문제다. 특히 경쟁 약이나 치료법이 있는 경우 진보성과 경제성이 있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데 진보성이란 결국 기존 약보다 효과가 더 좋아야 하고 경제성이란 결국 약값이 더 싸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과 연구소, 신약개발 벤처 등 신약개발에 관여하는 다양한 기관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 것을 메디컬클러스터라고 한다. 미국엔 대표적으로 보스턴에 하버드대학과 MGH(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메디컬클러스터가 있고 휴스턴에도 MD앤더슨 암센터를 중심으로 한 메디컬클러스터가 존재한다. 이런 메디컬클러스터에선 정말 많은 연구인력이 연구·개발을 한다. 예를 들면 휴스턴에는 한국인 박사급 연구원만 해도 300명 정도가 있다. 이런 메디컬클러스터가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여기에서 신약이 개발돼 그 인센티브나 기술이전 대가로 병원이 운영되지는 않는다. 신약개발의 여러 단계에서 병원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신약개발의 주체는 제약사나 신약개발 벤처회사일 수밖에 없고 각자의 역할을 잘 정립하고 협력하는 풍토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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