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선호, 국내에선 기피'…위기의 필수의료, 해결방안은

머니투데이 구단비 기자 2024.03.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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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전공의 공백 한 달, 드러난 K-의료 민낯 ④.끝.

편집자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출근을 거부한 지 한 달째다. 정부가 '면허 정지'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아 환자와 병원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교수들마저 단체 사직을 예고하면서 '강 대 강' 대치가 팽팽하다. 갈등을 봉합할 해법이 시급한 이유다. 이번 전공의 부재가 중증·응급질환 진료 시스템을 마비시켰다는 점도 이번 기회에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공의 부재가 보여준 대한민국 필수·지역 의료의 민낯을 분석하고 강 대 강 대치의 해법을 찾아본다.

'필수의료 살리기' 두고 엇갈리는 정부와 의사/그래픽=윤선정 /사진=뉴스1, 뉴시스'필수의료 살리기' 두고 엇갈리는 정부와 의사/그래픽=윤선정 /사진=뉴스1, 뉴시스


"힘든 거 하기 싫어하는 건 사람 본능 아닐까요? 편하게 돈 벌 수 있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갖고 살 수 있으면 당연히 그걸 택하지 왜 필수의료를 택할까요. 반대로 물어볼게요. 어려운 일과 쉬운 일이 있으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익명을 요구한 한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 A씨는 19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흉부외과는 심장과 폐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곳이지만 업무 강도가 높고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대표적인 기피과 중 하나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는 78명뿐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의 '2024년도 레지던트 모집 지원현황'을 살펴보면 심장혈관흉부외과의 경쟁률은 0.3:1에 불과했다. 소아청소년과는 0.9:1, 가정의학과는 0.7:1, 응급의학과는 0.8:1, 산부인과도 1.1:1에 불과했다. 내과와 외과는 1.3:1, 1.4:1이었지만 피부과는 2.0:1, 안과는 2.0:1, 정신의학과는 2.3:1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흉부외과는 인기과 중에 하나다. 미국의 의사 전용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닥시미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의사 중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의사 중 2위가 70만6775달러(약 9억4545만원)를 받는 흉부외과 의사로 꼽혔다.



A씨는 "선진국은 흉부외과가 인기과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지금 여기서 제가 받는 연봉의 5배 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또 흉부외과에서 필요한 시스템이 다 구비돼있다. 한국에선 인력이 부족하거나 장비가 없어서 쩔쩔매는데 선진국은 모든 시스템을 다 구비해놓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흉부외과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기피과인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도 일이 고되고 환자들은 까다롭고 돈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이유는 급여와 비급여 진료 항목의 분류에서부터 시작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 항목인 급여는 국가와 환자 본인이 일정 비율에 따라 분담한다. 급여로 정해진 진료 항목은 금액이 정해졌지만 비급여의 경우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금액을 정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필수의료과 전문의 B씨는 "필수의료를 급여로 지정할 당시에는 국가 재정상 문제로 보험가를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재는 비급여인 피부미용 분야가 커지면서 의료 인력 유출도 많아졌는데 정부가 이런 방향 설정을 준비하는 과정은 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패키지는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무작정의 재원 투입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자해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의료계는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우려하며 현재의 의료체계가 전면 개편돼야 한다고 봤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더 나은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는 제한된 재정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시스템 유지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봤다. 병원 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의료계와 환자 양측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면서 예산도 투자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는 무제한의 비용을 언제까지 투입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라며 "예산을 무작정 쏟아붓는 것에 대해선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결국은 정부는 의사에게 '앞으로는 처우가 지금보다 조정될 수 있지만 일터를 안전하고 오래 지킬 수 있다'고 말하고 환자에게 '앞으로는 병원에 쉽게 갈 수 없지만, 더 심각한 증세가 나타났을 때 보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며 "문제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으려면 정부와 의료계, 의료계와 환자 등이 서로 신뢰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필수 의료 지원을 위한 건강보험 수가제를 개혁하겠다고 했다. 기존 행위별 수가 제도를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 바꾸는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1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행위별 수가 제도는 지불의 정확도가 높은 장점이 있는 반면 행위량을 늘릴수록 수익이 생기기 때문에 치료 성과나 의료비 지출 증가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개편 작업을 위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내에 정부, 전문가, 의료계가 참여하는 의료비용분석위원회도 구성한다. 박 차관은 "기존 단점을 극복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의 목적인 국민의 건강 회복이라는 성과와 가치에 지불하는 가치 기반 지불 제도로 혁신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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