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르게 'RE100' 선언해도…"공급부족, 비싼가격" 기업들 속탄다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이세연 기자 2024.03.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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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지구온도 1.5℃ 위한 첫걸음 CFE(下)

"원전인근 데이터센터" "원가주의"…CFE확산전략 살펴보니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15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무탄소에너지 잠재력제고를 위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기자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15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무탄소에너지 잠재력제고를 위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기자


탄소중립(넷제로) 달성 과정에서 고려해야할 주요 사항 중 하나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온전히 보전하는 일이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산업 비중이 큰 우리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탄소중립 달성으로 전기가격이 올라가면 결국 한국산 제품의 가격상승과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여러 전문가가 탄소중립을 위한 수단으로 무탄소에너지(Carbon Free Energy, CFE)의 확산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CF연합(CFA) 주최로 열린 '무탄소에너지 잠재력 제고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전력부문 무탄소화 전략'을 발표했다. 박종배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리적 특성 등으로 재생에너지 가격이 높다"며 "우리 주력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경제적인 무탄소에너지 확보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전력 다소비 시설의 지역 분산을 통한 수급 조절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전력생산은 동남지역과 서해안 지역에 집중된 반면 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돼있는 탓에 송전망 건설에 비용과 사회적 갈등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전력 다소비 시설인 데이터센터의 전기사용신청 현황을 보면 수도권 비중이 60%에 달한다"며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첨단 산업단지의 과감한 지역 이전을 통해 지역별 수요를 맞추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원전 등 무탄소에너지 생산시설이 모여있는 동해 벨트·전남지역에 수요시설을 만들어 송전망 건설 등 비용을 줄여야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원전 출력조정 능력을 키워 자체유연성을 확대할 것 △전력저장장치를 통한 계통유연성 확보 △기간송전망 확충을 통한 CFE 자원 이용 극대화 등 정책과제도 제안했다.

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은 세미나에서 무탄소에너지 잠재력 제고필요성와 그를 위한 방안을 설명했다. 김 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재생에너지의 전례 없는 빠른 보급 등으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의 가치가 병행돼야 함을 인지했다"며 "다양한 무탄소에너지원을 활용하여 국내 상황에 맞는 청정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가별 여건에 적합한 탈탄소 전환이 가능하게 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어 "2035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의 설정은 각국이 자신의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한다"며 "전원 구성의 개편을 통해 무탄소에너지원의 비중을 증가시키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유희종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셍에너지센터 소장은 "우리나라는 보조금이나 REC(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정산 등 제도를 통해 국가주도 재생에너지 정책을 계속했다면 RE100(재생에너지로 100%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민간시장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이뤄지는 데 의미가 있다"며 "CFE도 이니셔티브가 성공하면 민간주도 탄소중립 시장을 여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C가격은 오르고, 재생에너지 발전율 겨우 9%…속타는 기업들
최근 2년간 REC 월평균 가격, 주요 기업 재생에너지 전환율, 국내 기업 RE100 참여 애로사항, 신·재생에너지 발전량과 발전 비율/그래픽=윤선정최근 2년간 REC 월평균 가격, 주요 기업 재생에너지 전환율, 국내 기업 RE100 참여 애로사항, 신·재생에너지 발전량과 발전 비율/그래픽=윤선정
기업들은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에 회의감을 표한다. 재생에너지만을 통한 전력 충당이 가능하겠느냐는 근본적 질문이 출발점이다. 공급 부족과 비싼 가격, 각종 규제 등 걸림돌이 상당하다. 기업들은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탄소를 발생하지 않는 원전·연료전지 등을 포함한 개념인 CFE(무탄소에너지)로 눈길을 돌린다.

18일 신재생 원스톱 사업정보 통합포털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의 지난달 월평균 가격은 7만9323원이다. 2년 전 평균 가격(5만6036원)보다 42%가량 올랐다. REC 월평균 가격은 지난해 9월부터 8만원대를 육박하며 최근 4년 새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RE100을 선언한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 위해 주로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거나 기존 전기요금과 별도의 '녹색 프리미엄'을 한국전력에 납부한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며 기업 입장에선 만만찮은 비용을 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기업들은 RE100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비용 부담(35.0%)을 꼽는다. 관련 제도 및 인프라 미흡(23.7%), 정보 부족(23.1%) 등이 뒤따랐지만 무엇보다 높은 가격이 재생에너지 100%의 벽을 높게 만든다고 호소한다.

수요에 비해 모자란 공급이 가격상승을 유발한다. 글로벌 탄소중립 흐름으로 RE100 기업이 늘어나며 재생에너지 수요가 증가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은 일조량과 바람이 부족한데다, 많은 인구가 좁은 국토에 살고 있어 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이 불리하다. 또 유럽연합(EU)이나 북미와 달리 전력계통이 고립돼 있어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약이 따른다. 발전비용이 미국의 3배, 영국의 2배에 이르는 이유다.

발빠른 국내 기업은 일찍부터 RE100을 선언했지만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해외기업에 비해 더디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 처음으로 RE100에 가입한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전체 소비전력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56%에 달해 주요 기업 중 유일하게 50%를 웃돌았다. 2위 삼성전자와 3위 SK하이닉스가 30% 안팎의 조달률을 보이는 가운데 4위 LG전자 5위 현대차의 조달률은 한 자릿수다.

같은 기업이더라도 한국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낮은 것은 어려운 한국의 상황을 방증한다. SK하이닉스 해외 사업장의 경우 2022년 재생에너지 100% 사용률을 기록하며 RE100을 달성했지만 국내 사업장에서는 전사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2021년 4%에서 2022년 29.6%로 올리는 데 그쳤다. 한국의 전체 발전량 중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율은 9.22%다. 발전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해 주요 기업의 수요에 대응하는 데도 벅찬 현실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탄소감축을 요구받는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데 RE100에 대한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며 "한국은 재생에너지 조달률이 낮은 반면, 원전의 비중이 높고 청정수소 등에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에 CFE가 현실성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해외 고객사들도 무탄소 에너지원을 사용하더라도 이를 탄소감축으로 인정해주는 국제적 인식 확대가 동반돼야 한다"며 "단순히 비용감축이 아니라 기업의 탄소중립 이행 속도를 높이는 현실적이고 빠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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