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힘들어"…중증 암환자 밀려드는 원자력병원 '한계'

머니투데이 박건희 기자 2024.03.12 13:59
글자크기

국내 최초 '암 전문 병원' 원자력병원, 전공의 이탈로 의료인력 기존 3분의 1
주변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밀려왔지만… 군의관·공보의 배정 '제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국원자력의학원을 방문해 이진경 한국원자력의학원장과 비상진료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국원자력의학원을 방문해 이진경 한국원자력의학원장과 비상진료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발생한 의료 공백이 4주 차에 접어든 가운데 암 중증환자를 전담하는 '암 전문 병원 원자력병원 전공의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남아있는 전임의들이 24시간 응급실, 중환자실, 투석실을 밤새 돌며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주변 상급종합병원에서 전원 온 중증환자까지 밀려들면서 의료진은 "이대로라면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호소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11일부터 의료 현장에 군의관과 공보의를 투입한다고 밝혔지만 원자력병원은 제외됐다.

12일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산하 한국원자력의학원 원자력병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철현 원자력병원장 등 의료진은 "공공의료기관으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공공병원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원자력병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산하 공공의료기관이자 암 전문 병원이다. 공공병원인만큼 국가 재난 발생 시 환자를 최대한 수용하고 의료진을 현장에 파견하는 등 책임을 맡는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당시엔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했다. 병원 암병동을 음압병동으로 개조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했다. 당시 병원장이었던 홍영준 진단검사의학과장은 "기존 암 중증 환자를 진료하면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동안 병원에 450억원의 적자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12일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 대기실에 접수 및 수납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환자들의 모습. /사진=박건희 기자 12일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 대기실에 접수 및 수납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환자들의 모습. /사진=박건희 기자
이번 의료 공백 사태에 대응해서도 비상진료체계를 가동 중이다. 전공의 이탈이 발생하기 전인 2월 14일 이전엔 61명이었던 전공의·펠로우의 수가 12일을 기준으로 26명이 됐다. 35명의 공백이 발생하면서 진료 가능한 의사의 수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중증 환자를 돌봐야 하는 만큼 남은 인력을 당직 근무로 편성해 응급실, 중환자실, 혈액투석실 등을 24시간 운영 중이다. 기존 외래진료나 수술 일정은 그대로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의료진은 "당직 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체력적 한계에 다다랐다"며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11일부터 군의관과 공보의 158명을 의료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지만 원자력병원에는 배정되지 않았다. 과기부 산하 공공기관이라는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수술에 차질이 생긴 서울 시내 상급종합병원의 암 환자들도 원자력 병원으로 옮겨왔다. 암 전문 병원인만큼 중증 암 환자의 전원을 수용해 수술 및 항암치료를 수행하도록 했다. 11일 기준 전원 환자는 총 7명이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고대안암병원, 보훈병원 등에서 항암치료, 수술 등을 목적으로 전원했다.

김 원장은 "국가적인 비상 상황에서 공공병원으로서 중증 환자를 케어하려면 평상시에 병원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며 "원자력병원은 대학병원처럼 대학의 재정 지원을 받거나 복지부 산하 병원처럼 운영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원자력 병원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병원 운영에 대한 직접 직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며 "병원은 주기적인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진료 역량이 유지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병원과 비교해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병원 내 노후화된 장비에 대해선 과기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개선책을 찾는 중"이라고 답했다. 또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원자력병원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