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김재철, 20년 무명 청산 소감 "비현실적 느낌" [인터뷰]

머니투데이 김나라 기자 ize 기자 2024.03.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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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현 감독의 원픽! 오디션 없이 박지용 역 낙점

/사진=키이스트/사진=키이스트


배우 김재철(41)이 새해 최고 흥행작 '파묘'로 20여 년 무명을 딛고 마침내 대중에게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김재철은 지난 2000년 영화 단역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 '하면 된다' '번지 점프를 하다' '후 아 유' '이장과 군수' '바람' '공조' '조작된 도시'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스크린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를 누비고 안방극장에도 얼굴을 내비쳤는데, 2020년 드라마 '하이에나'로 첫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주인공 김혜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썸남' 케빈 정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를 기점으로 김재철은 '연모' '킬힐' '스틸러 : 일곱 개의 조선통보' 등 인기 드라마에 연이어 캐스팅돼 신스틸러 조연으로 거듭났다.

결국 김재철은 'K-오컬트 장인' 장재현 감독의 '픽'으로 영화 '파묘'에서 주요 역할을 따냈다. 장재현 감독이 지금의 결과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기 전엔 주인공으로 설정되었던 박지용 캐릭터를 그가 연기한 것이다. 박지용은 을사오적 친일파 박제순, 이지용에서 이름을 따온 인물. 3대째 집안에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고 있어 무당 화림(김고은)에게 도움을 구한다. '파묘'의 서막을 미스터리하게 여는 중요한 역할을 김재철이 해내며, 676만 명을 동원한 파죽지세 흥행세에 기여를 했다. 그는 특유의 젠틀한 이미지 아래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영화의 공포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대선배 최민식(김상덕 역)과 안정적으로 호흡을 주고받고, 빙의 연기에 일본어 대사까지 소화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 단역, 조연을 거쳐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김재철은 6일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파묘'가 개봉 초반부터 이렇게 크게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감사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과분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개봉 3주 차에 접어든 '파묘'는 장기 흥행 체제에 돌입, 1000만 스코어 달성마저 노리고 있다. 이에 김재철은 들뜨기보다 장재현 감독과 동료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1000만 돌파에 대한 기대감이 있긴 하지만 그 기대대로 안 돼도 감사하다. 저도 영화의 일원이긴 한데 장재현 감독님 이하 최민식, 유해진 선배님들 김고은, 이도현뿐만 아니라 큰산 같은 박정자 선생님 등 워낙 모두의 팀플레이가 좋았다. '오컬트를 이렇게 재밌게 찍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현장이 진짜 유쾌했다. 촬영이 잡히면 마치 소풍 가는 것처럼 들뜬 작품이었다. 진짜 행복했는데 큰 사랑까지 받으니 정말 감사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1000만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제 사심보다는 장 감독님과 이 팀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예상보다 큰 스코어에 축배 분위기보다 다들 겸허하게 '이게 무슨 일? 이래도 되나?'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내 그는 "딸이 이제 두 돌 지났다. 아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촬영이 없거나 하면 제가 육아를 하고 있다. 어제는 육아를 하다가 오늘은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내일은 내가 어린이집에 (딸을) 데려가야 하는데. 비현실적인 느낌이다"라고 평범한 '딸 바보 아빠'의 일상을 언급해 폭소를 유발했다.


'파묘' 김재철, 20년 무명 청산 소감 "비현실적 느낌" [인터뷰]
'파묘' 출연은 온전히 장재현 감독이 신뢰를 준 덕에 이루어졌다고. 김재철은 "소속사(키이스트)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장재현 감독님이 '파묘'라는 신작을 준비 중인데 저와 미팅을 하고 싶다고. 많이 놀랐다. 왜냐하면 그때 이미 '파묘'가 기획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감독님의 워낙 오랜 팬이라 '와 제목도 끝내준다'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최민식 선배님이 출연한다니 '끝이구나', 팬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파묘'인데 저를 보자고? 왜? 어리둥절했다. '내가 할게 있나', 혹여 연기를 시켜보시진 않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감독님을 만나러 갔는데, 감독님은 벌써 결정을 다 하셨더라. 첫 미팅 때 '잘 할 거라 믿고 캐스팅하기로 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이에나'를 보셨는지, 먼저 저를 확인해 보시고 결정하신 거였다. 교포 느낌의 부잣집 아들인데, 새로운 얼굴이어야 한다고 했다"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이에 김재철은 장재현 감독을 향한 남다른 마음을 표했다. 그는 "당시 감독님의 두 손을 꽉 잡고 '은인입니다' 그랬다"라며 여전히 감격에 젖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장재현 감독님의 전작 '검은 사제들' 때부터 새로운 작품의 탄생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작품인 '사바하'도 극장에서 보는데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갔음에도 일어나지지가 않더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꼭 오컬트 장르라서가 아니라, 한 영화로서 좋았다. 이분은 다른 결이란 생각에 만나보기 전부터 어떤 성격이실지 되게 궁금했다"라고 특급 팬심을 고백했다.

실제로 겪은 장재현 감독은 어땠을까. 김재철은 "가만히 계시면 속을 모르겠는데, 근데 겪어 보면 눈물이 많고 소년처럼 여리시다. 정도 많아서 자기 사람을 챙기는 마음도 크시다. 함께 작업하며 확인이 되었다. 정말로 제가 본인이 직접 캐스팅한 배우라는 점에서 맡은 캐릭터를 누구보다 잘 해내길 많이 바랐던 것 같다. 최근에 무대인사를 돌며 감독님이 문자 메시지를 하나 보내주셨는데 '김재철이라는 원석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내용이었다. 울컥했다"라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장 감독의 치밀한 디테일과 배려심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김재철은 "진짜 디테일하게 연출하셔서 놀랐고, 또 감독님의 스타일이 먼저 설명적으로 밀어붙이시지 않더라. 배우가 뭔가를 찾아오면 같이 깎고 다듬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박지용이 빙의되어 일본어로 선언문 낭독하는 신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엄청 고민했다. 와중에 장재현 감독님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파묘' 촬영 초반 때라, 감독님이 바쁘실까 봐 연락을 못 드리고 있던 찰나에. 뭐 하냐고 하셔서 그 장면 연습 중인데 잘 모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럼 얘기하지' 하시며 녹음을 해보자는 제안을 주셨다. 그래서 제가 혼자 차에 가서 50가지 버전으로 녹음을 하여 보내드렸다. 목이 다 쉴 정도로 녹음했고, 그중에서 제 딴에 괜찮은 것만 골라서 20개 정도를 감독님께 전송했다. 감독님도 새벽까지 잠을 안 주무시고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셨다. 그렇게 제 버전의 톤을 감독님이 잘 잡아주셔서, 현장에선 기술적인 부분만 고민해도 될 정도가 됐다. 말투, 불안함의 정서도 어느 선으로 잡을지 감독님과 직접 만나서 연습했고. 그때 또 느꼈다. 감독님이 저한테 애정이 많고 책임지려 노력하신다는 걸. 덕분에 관객분들이 잘 봐주셔서 저 자신도 뿌듯하지만 장재현 감독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라는 일화를 풀었다.

또 박지용 캐릭터에 대해 김재철은 "감독님도 저도 일차원적인 악인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어떻게 보면 슬픈 사람이지 않나. 친일 후손인 게 본인의 선택도 아니었고, 자식을 살리려 나선 가장이었으니까. 아빠의 마음 혹은 유약하게 보이길 바랐는데 그렇다고 또 희생자처럼 가는 인물이라든가 슬프게 느껴져선 안 됐다.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계속 줄타기를 하는, 어느 쪽으로든 치우쳐선 안 되는 역할이었다. 그걸 좋게 보셨다면 다 감독님의 철저한 계산 덕이다"라고 설명했다.

목이 돌아가는 기괴한 비주얼로 '파묘'의 명장면 중 하나를 탄생시킨 김재철. 이에 대해 그는 "목이 돌아가는 각도에 따라 연기를 해야 했다. 나중에 CG로 합성을 했지만, 저도 돌릴 수 있는 최대한을 돌렸다. CG 팀이 고생이 많았을 거 같다. 저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재밌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있어서 '성공했다' 싶었다. 제가 봐도 내가 돌린 것처럼 자연스럽더라"라며 기쁨의 미소를 보였다.

'파묘' 김재철, 20년 무명 청산 소감 "비현실적 느낌" [인터뷰]
작품성뿐만 아니라 역대급 팬 서비스의 무대인사 매너로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파묘' 팀이다. 그 중심엔 최민식이 있는 바, 김재철은 "정말 멋지시다"라며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는 "언젠가 나도 연륜을 쌓고 무게감이 생긴다면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최민식 선배님도 그렇고 유해진 선배님도 진짜 대단하시다.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두 분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무대인사 때도 이렇게 배울 점이 많다니, 생각 못 했다"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김재철은 "제가 퍼포먼스를 하는 역할이라 최민식 선배님은 관찰자 입장으로 보고 계셨다. 고생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 하며 바나나우유를 챙겨주셨다. 그때 제 느낌엔 절 인정해 준 듯했고 마음을 열어주신 듯했다"라며 최민식에게 고마워했다.

최민식, 유해진을 비롯해 김고은, 이도현 등 '묘벤져스'의 폭발적인 열연을 옆에서 지켜본 감상은 어떨까. 김재철은 "김고은의 대살굿 장면을 보는데 정말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혼자 달려야 하고 끊어 갈 수도 없으니. 카메라 4대로 특별하게 촬영됐다. 그럼에도 김고은은 힘든 내색 한 번 않고 멋지게 해냈다. 진짜 대단하더라. 저도 배우이지만 '배우는 배우이구나' 놀라웠다. 정말 멋있게 봤다. 최민식, 유해진 두 선배님은 말할 나위 없고. 이도현의 빙의신도 그 긴 분량을 계속 내달리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라고 높이 샀다.

'파묘' 김재철, 20년 무명 청산 소감 "비현실적 느낌" [인터뷰]
김재철 또한 관객들로부터 '진짜 교포 출신 아니냐'라는 의혹(?)을 부를 정도로 빙의되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 같은 반응에 김재철은 "저는 토종 한국인"이라며 "현재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거주하고 있는데, 정확히 말씀드리면 서울 송파구 풍납동 출신이다"라고 해명해 웃음을 자아냈다.

리얼한 열연의 비결엔 아내의 도움이 숨어있었다. 김재철은 "아내가 재미교포라 대사들을 녹음해 주고 제가 외워서 하면 피드백을 또 주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남은 미국에서 살고 한 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는 친구인데 영화를 보곤 '형님, 발음이 엄청 좋다'라며 칭찬해 줬다"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김재철은 "저는 부유한 교포가 아니라도, 어떤 역할이든 자신 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을 할 수도 있고 입히는 옷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제가 '하이에나'라는 드라마로 매체에 처음 어필이 된 걸 계기로 계속 비슷한 역할이 들어왔다. 나름 다 매력이 있어서, 안 할 이유 없어서 해왔는데 감사하면서도 각인된 것에 아쉬운 부분도 있다. 다른 캐릭터로 인사를 드리고 싶은 바람이다. 사극 '연모'를 할 때는 못 알아보는 분이 계셔서, 그럴 때 희열을 느꼈다. 칭찬이 목마르다. 앞으로도 '파묘의 그 배우 맞아?' 하는 말을 듣는 게 큰 목표이다"라고 당차게 각오를 다졌다.

'파묘' 김재철, 20년 무명 청산 소감 "비현실적 느낌" [인터뷰]
'파묘'의 의미를 묻는 말엔 "'기회'라고,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연기를 해왔고 독립 영화든 단편 영화든 그때마다 다 저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실망한다거나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데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는 생각에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다. 다 고마운 기회였고, 영광스러운 훈련이 됐다. 버티는 데는 자신 있다. 이게 또 반짝하고 말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오디션을 또 보고 도전하면 되니까. 이것이 길게 무명을 겪으며 배운 거고, 스스로에게 감사한 부분이다. 이걸 깨달으라고 늦게 된 건가 싶다. 만약 10년 전이었다면 저도 '이 기회를 잡았으니 끝났다' 하고 들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제 자녀도 있고 분유 값이라도 더 벌면 좋겠다는 아빠의 마음이라,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들뜨는 기분을 다 잡고 있다"라고 겸손하게 답해 눈길을 끌었다.

끝으로 김재철은 "'파묘'는 제 필모그래피 중 가장 큰 상업 영화였고 캐릭터였는데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어떤 연기든 배우로서 욕심이 많으니까, 앞으로도 역할 크기 상관없이 좋은 캐릭터로 찾아뵙겠다"라고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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