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합의 해놓고…선거 앞둔 여야 뭉갠 '집시법' 살펴보니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2024.02.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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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집시폭탄④]대통령 집무실+전직 대통령 사저, 하나씩 주고받은 여야…상임위 의결하고 방치

편집자주 용산 시대에 살지만 법은 청와대 시절에 멈췄다. 대통령실 근처로 각종 집회·시위가 몰리고 전직 대통령 사저를 겨냥한 소음 테러도 극심하다. 6월부터는 대통령 사저 주변 또한 시위대에 사실상 무장해제가 된다. 신속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지만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갇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집시 1번지 용산' 시대의 과제를 짚어봤다.

집시법 개정안 논의 타임라인. / 그래픽=조수아집시법 개정안 논의 타임라인. / 그래픽=조수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부분은 (여야) 간사 간에 사전 합의해서 우리가 통과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 의견은 속기록에 담고 그렇게 의결하고자 합니다." - 2022년 12월, 당시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채익 위원장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 공관 반경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한 지 1년여가 지났다. 집시법 개정 시한은 약 3달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가 개정안 마련에 손을 놓고 있는 가운데 입법 공백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전직 대통령 사저, 하나씩 주고받은 여야…상임위 의결하고 나몰라라
대통령실이 서울 용산구로 이전되면서 집시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공간적으로 분리된 가운데 기존 법 취지대로 대통령 집무실을 집시 금지 장소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현행 집시법 11조 3호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 등의 공관 △헌법재판소 및 법원 △외교기관·외교사절 숙소 100m 이내 집시가 금지된다. 이에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4월20일 집시 금지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을 포함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 무렵 경남 양산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극우 유튜버 등이 확성기와 마이크 등을 사용해 매일 같이 집회를 열어 주민들이 고통을 소호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해 5월16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시 금지 장소에 포함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후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 대신 대통령 집무 공간을 집시 금지 장소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한 차례 더 발의했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 인도에 집회 장소와 통행로를 분리하기 위한 폴리스라인이 세워져 있다./사진=뉴스1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 인도에 집회 장소와 통행로를 분리하기 위한 폴리스라인이 세워져 있다./사진=뉴스1

'하나씩 주고 받은' 여야는 큰 틀에서 집시법 개정안에 공감대를 이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채익 위원장은 "집시법 일부개정안 부분은 (여야) 간사 간에 사전 합의해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용혜인 새진보연합 대표와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으나 집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상임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헌법재판소 집시법 11조2호 '헌법불합치' 결정…대통령 관저 반경 100m 집시 금지 대상 아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022년 12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권한쟁의심판·위헌법률심판 사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022년 12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권한쟁의심판·위헌법률심판 사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같은 해 12월22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만장일치로 '대통령 관저·국회의장 공관 100m 이내 집회와 시위를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민이 집회를 통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현하고자 할 경우 대통령 관저 인근은 가장 효과적으로 의견이 전달될 수 있는 장소"라며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 보수 시민단체 대표 A씨는 2017년 8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경계 지점에서 68m 떨어진 분수대 앞에서 집회를 벌이다 집시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이듬해 11월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사건을 심리한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조아라 판사는 집시법 11조 조항의 입법 목적과 수단의 적절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은 충족하지 못해 제청신청인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받아들였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도 2018년 1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의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올해 5월31일 집시법 개정안 마련해야 하는데…국회 '입법 공백'에 혼란 불가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 인도에서 열린 집회에 대형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사진=뉴시스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 인도에서 열린 집회에 대형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사진=뉴시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국회는 오는 5월31일까지 집시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에서 개정 시한까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4월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등의 이유로 법사위 논의가 완전 중단 됐기 때문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월 총선을 50여일 앞두고 당내 경선 등 일정들로 국회의원 대부분이 지역구에서 시간을 할애하게 돼 협상 테이블에 앉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국회의 입법 공백으로 현장에 혼란이 더해진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지금도 윤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구로 옮긴 이후 집시법 11조 해석을 두고 정부 기관과 시민단체 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경찰은 집시법 11조에 명시된 대통령 관저를 집무실로 해석해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금지했다. 시민단체들은 경찰의 금지 통고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본안 소송 등을 제기했다. 법원은 가처분 소송이 제기될 때마다 집회를 허용하는 것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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