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동발 건설 호황에 중화학, 조선이 뜨자 기계공학과, 건축과, 토목과에 지원자가 몰렸다. 80년대가 되자 물리학과, 전자공학과가 각광 받았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자 산업이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다.
90년대, 컴퓨터공학과가 가세했다. IT(정보기술) 산업과 벤처가 산업의 총아로 부상하던 시대였다. 2000년대 들어 대세는 완전히 의예로 넘어왔다. 외환위기로 대마불사 신화가 깨지고 그토록 대우 받던 엔지니어마저 짐을 싸던 시대를 지나면서다. 이렇게 부상한 직종이 의사다. 이 시기 이후 의예는 '입시천하'를 완벽하게 평정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이후 '잠을 제대로 못 자 퀭한 눈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우리에게 어떻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느냐'는 전공의들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먹히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거의 자연 반사적으로 '다 알고 간 거 아니었어?' 소리가 나온다.
의료인들은 의사 수 늘린다고 필수 의료가 부활할 거라는 기대는 난센스라고 입을 모은다. 추가될 2000명이라고 생각 구조가 다르진 않을 것이다. 요행히 안과 경쟁 낙오자들이 소아과를 선택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바람직한 일은 못 된다.
의사들의 비급여 진료 선호 현상은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초래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팀 분석을 보면 2022년 한국의 의료비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9.7%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3%)보다 높다. 정작 근로소득자 기준 건강보험료율(월급에서 건보료 비중)은 7.09%로, 일본(10~11.82%)이나 독일(16.2%), 프랑스(13.25%)보다 크게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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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국민 의료비 상당 부분이 비급여로 지출되니 통제권 밖의 의료행위가 주목받고 의사가 몰리는 악순환이다. 건보료율과 보장률을 높이면서 민간보험 기능을 약화하는 게 정부와 의사를 포함한 모든 국민을 위한 해법이다.
의대 정원 확대에서 출발한 필수 의료 논쟁을 계기로 한국 의료계 부조리가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정부와 의료계가 진정성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번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는 큰 진전을 위한 일보 후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