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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노출이 많은 캐릭터다. 벗는 연기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웬만한 감정신보다 훨씬 섬세한 심리 표현이 필요하고, 맨몸이 노출되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더구나 노출 이후 선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악플로 인한 심리적 타격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미지가 고착화하는 선입견도 생길 수 있다. 신인이라고 해도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 셈이다. 따라서 명작 베드신일수록 그 뒤에는 감독과 배우의 치밀한 계산과 부단한 노력이 숨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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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를 보고 나면 무당으로 변신한 김고은의 연기가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무당도 앞서 말한 엄마 역할 못지않게 젊은 여배우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기존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속인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알록달록한 컬러의 한복을 입고 신들린 굿을 하는 중년의 여성. 젊은 여배우가 하기엔 좀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김고은은 이런 고정된 이미지를 여지없이 깬다. 패션 스타일부터가 신선하다. 이화림은 매우 ‘용한’ 무당이지만 평소엔 MZ세대 스타일을 즐긴다. 긴 생머리에 가죽 코트나 셔츠 차림이다. 말투도 현대 직장여성들의 그것과 같다. 가끔 내키지 않을 때 욕을 내뱉는 것 말고는 그리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무속인의 ‘모드’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표정과 분위기가 바뀐다. 영화 속에서는 무덤을 파는 도중에 굿을 하는 장면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바로 최민식이 칭찬한 대목이다. 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깨를 불규칙적으로 흔들며 꿈틀거리는 모습이 단번에 시선을 붙잡는다. 리얼리티와 동시에 미스터리를 자아낸다. 손에 칼을 들고 하는 격렬한 춤사위는 인간과 신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분위기를 절로 만들어낸다. 신들림이 절정에 오르자 끝내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다시 빼내어 자신의 입가에 시꺼먼 줄을 긋는다. 기괴하기 짝이 없고 섬뜩해서 머리털이 곤두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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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은 2012년 ‘은교’(감독 정지우)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박범신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은교’는 위대한 노(老)시인 이적요(박해일)와 그를 존경하고 질투하는 제자 서지우(김무열), 그리고 둘의 삶에 끼어든 당돌한 소녀 은교(김고은)의 이야기다. 은교를 연기한 김고은은 매우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소화했다. 특히 엔딩에서 전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놀라운 근성을 보여줬다.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을 포함해 그해 모든 신인상은 김고은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은교’의 그림자가 컸다. 그후 김고은은 한동안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는 듯했다. 영화 ‘몬스터’(2014)에서 변신을 꾀했으나 아쉬웠고, ‘협녀, 칼의 기억’(2015)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전에 몇몇이 그래 왔던 것처럼 김고은도 수위 높은 노출 연기에 발목이 잡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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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파묘’는 김고은의 필모그래피에서 두 번째 변곡점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돌하면서도 맑고 순수하던 그는 이번엔 매우 이질적인 캐릭터에 도전했고, 스스로 연기의 지평을 넓혔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김고은은 일영 역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김혜수와 함께 주연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로 박수받았다. 두 여배우의 카리스마 대결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은 그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는데 김고은은 칸 집행위원장에게 또 한 번 찬사를 들었다. "일영에 완벽하게 녹아든 그녀는 제2의 전도연이 될 것이다." 전도연은 ‘밀양’으로 2007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여배우로서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런 평가가 이제야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제2의 전도연'이란 찬사를 받은 지 9년이 지났고 김고은은 이미 정상의 배우로 자리매김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혜수나 전도연에 버금가는 전천후 대형 여배우의 탄생과 전진을 기대해본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또 다른 파격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