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채무가 문제되는 조정사건에서는 통상 채무자의 현실적인 변제자력을 고려해 채무 일부를 탕감하고 분할 납부하는 내용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에서도 채무자가 특정한 시점까지는 채권자에게 지급할 돈을 마련할 수 있음을 전제로 탕감된 채무를 3회 분할로 지급하는 조정이 성립되었다.
위와 같은 사정들만으로 기망의 고의가 없었다고 본 판단에도 물음표가 붙지만, 법리적으로도 다소 의문이 든다. 대법원은 민사조정에서도 증거조작과 같은 명백한 범죄혐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쉽게 소송사기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재판절차에서 소송사기를 쉽게 인정하면 민사재판제도의 위축을 가져와 당사자가 쉽게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래 소송사기는 엄격하게 인정이 되는데, 민사재판제도가 위축될 위험성은 민사조정제도에서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반면 조정절차에서는 증거에 의해 꼼꼼하게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일정 부분 양보함을 전제로 조정안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당사자는 당연히 자금확보일정 등에 관하여 상대방이 한 주장이 사실임을 전제로 최종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당사자는 법원이 진행하는 조정절차에서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더욱 믿을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 처음부터 기망의 의사가 있었다면 그 위법성은 더 크다고 볼 수 있고,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진다면 오히려 민사조정제도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당사자는 법적 절차에서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믿고 조정을 한 것인데,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말을 믿고 조정을 하겠는가? 물론 어찌되었든 법원이 관여한 조정절차에서 오고 간 이야기에 형사법의 잣대를 적용시키는 것이 법정책적으로 타당한지에 관한 고민은 있었겠지만, 신의를 저버린 행동에 아무 제재가 가해지지 못한다면 '성공한 거짓말은 처벌하지 못한다'는 나쁜
선례가 남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