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망할 회사에 20조 원이나 쏟아부었을까

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0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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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세계 최대의 공유오피스 플랫폼 기업인 위워크(WeWork)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면서 모든 언론이 한 사람을 주목했다. 위워크라는 스타트업에 무려 169억 달러(약 22조 원)를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470억 달러(약 63조 원)까지 끌어올렸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역사에 남을 몰락'이라고 평했으며, 손 회장은 최소 137억 달러(약 18조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알려졌다.

위워크는 애덤 뉴먼(Adam Neumann)이 2010년 뉴욕에 설립한 공유 오피스 플랫폼이다. 2012년 1억 달러에 불과했던 기업가치는 손 회장의 지속적인 투자로 불과 몇 년 만에 470억 달러로 500배 가까이 치솟았다. 엄청난 투자금을 바탕으로 위워크는 전 세계 40개 국가에서 공격적 확장 전략을 펼치며 혁신의 대명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2019년 상장을 추진하던 위워크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상세 실적이 공개되면서 파국을 맞이했다. 상상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뚜렷한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이 없는 단순한 부동산 임대업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로 인해 IPO는 무산되었고 기업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천신만고 끝에 2021년 말 소프트뱅크가 투자했던 기업가치의 5분의 1도 안 되는 90억 달러로 SPAC을 통해 우회상장은 하였으나, 거듭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불과 2년 만인 2023년 11월 초 주가가 상장 후 99.96%나 떨어진 83센트를 기록한 상태에서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이다.



손 회장은 '현금을 태워 빠르게 성장한다'는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전략을 선호했는데, 그래서 위워크에도 회사의 수익성은 신경 쓰지 말고 시장점유율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일단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면 나중에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던 것이다. 그래서 적자를 이어가는 위워크에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해서 돈을 쏟아부었다.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가 이런 블리츠스케일링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그러나 이 전략은 비즈니스모델이 탄탄한 일부 테크기업에만 적용된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애덤 뉴먼은 단순한 부동산 재임대 회사인 위워크를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으로 둔갑시켜 손 회장에게 어필하여 거액의 투자를 끌어냈던 것이다. 결국 창업자인 뉴먼은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와 관련된 상세한 스토리는 얼마 전 '우린 폭망했다(We Crashed)'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돼 애플TV+를 통해서 방영됐다.

위워크와 같이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 궤도에서 이탈해서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는 것을 블리츠페일링(Blitzfailing)이라고 한다. 규모가 작은 기업에 비해 불어난 몸집 때문에 가속도가 붙어서 더 빨리 몰락할 수 있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트리아지(triage)'라는 분류체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분류'라는 뜻을 지닌 트리아지는 응급상황 시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환자 분류체계다. 1800년대 프랑스 나폴레옹 제국 친위대 소속 외과의사였던 도미니크장 라레가 도입한 개념으로 전쟁이나 대형 재난, 각종 사고로 갑자기 많은 환자가 동시에 발생하면 한정된 의료진과 장비로 모든 환자를 동시에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우선순위가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릴 수 있었던 환자는 치료도 전혀 못 받고, 오히려 가망 없는 환자한테 시간만 허비하다가 희생자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개념으로 실리콘밸리에서도 트리아지가 존재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매년 벤처캐피털들이 평균적으로 3000~5000개의 스타트업 IR 자료를 받는다. 그러나 인원과 시간 제약으로 이렇게 많은 회사를 모두 검토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검토 우선순위를 정해 놓는다. 그 기준에 따라 100개 정도를 심도 있게 분석하여 10~20개의 기업에 투자를 진행한다. 또한 투자도 미리 정해진 우선순위에 따라 진행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투자금액이 대폭 감소한 혹한기에 철저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면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에 투자했던 기업 중에서 실적이 좋고 위험성이 낮아 보이는 회사, 큰 금액이 필요한 시리즈 C 이상의 후기 투자보다는 적은 금액이 투입되는 초기 스타트업, 첨단 하이테크 기업보다는 현금흐름이 좋고 안정된 회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기간 내에 엑시트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 우선적으로 투자를 한다. 결론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의 상위 10~20%에 집중하고, 신규 투자는 최소화하는데 주로 초기 기업에 한다는 것이다.

투자업계의 트리아지에서 가장 중요한 불문율은 '이미 투자한 금액의 많고 적음'이 기준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들어간 돈이 너무 커서 포기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계속 투자하게 되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면, 투자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좋은 투자기회는 놓치고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릴 패는 과감히 버리고 승자에게만 집중하는 것이다.

위워크는 트리아지 전략이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블룸버그도 손 회장의 독단적인 투자 스타일을 지적했지만, 위워크를 포기하지 못한 것은 블리츠스케일링에 적합한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위워크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입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엑시트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화를 입게 된 것이다.

위워크의 실패를 공유 경제의 몰락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기본적인 트리아지 전략을 따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해석된다. 세계 최대 규모로 출범한 비전펀드에 걸맞은 성공 트로피도 필요했고, 세계 최고의 투자자라는 명성에 오점을 남기기 싫었던 손 회장은 안타깝게도 역사에 남을 최악의 투자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언제나 위기는 닥칠 수 있다. 그래서 위험관리의 핵심은 나빠진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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