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회는 고준위방폐물 입법 부작위를 또 방치할 것인가

머니투데이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2024.02.0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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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 정재학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


삶의 질 향상과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전기'는 생산 과정에서 원치 않은 부산물이 함께 발생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도 고준위방폐물이 부수적으로 발생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등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한 입법권을 국회에 부여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1978년 원전을 처음 도입한 후 지금까지 근 반세기 동안 고준위방폐물을 생태계로부터 안전하게 격리하기 위한 법률의 不備(불비)를 방치했고 이젠 21대 국회도 다르지 않다는 비관론이 주를 이룬다.

지금까지 모두 책임 회피만 해 왔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전국 규모 공론화(2013~2015년)를 통해 2016년 7월 관리정책을 처음 수립했다. 이어 20대 국회에서는 고준위방폐물에 관한 3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2020년 5월 임기만료로 허무하게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이미 수립된 관리정책을 시행도 안 해보고 또다시 전국 규모 재공론화(2019~2021년)를 거쳐 2021년 12월 관리정책을 개정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각각 2건의 법률 제·개정안을 발의해 강한 입법의지를 보이나 했지만, 4월 총선과 5월 임기만료 등 남은 정치 일정을 볼 때 희망은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



고준위방폐물 문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선도국은 '입법부가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라는 우리에겐 없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연방의회가 1982년 '고준위방폐물정책법'을 제정해 관리정책과 전략을 법제화했다. 프랑스, 일본, 캐나다 및 독일 의회도 1991~2013년 사이에 별도 법률을 제정해 입법 의무를 다했고 특히 프랑스 의회는 정책 수립 및 평가·심의 등 고준위방폐물 문제 해결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 의회는 정책수립 및 부지선정에 대한 행정부의 결정을 승인하고 스웨덴 의회는 기본원칙 수립에 관여하는 등 우리 입법부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 왔다.

이번 고준위방폐물 특별법은 과거 안면도나 부안에서와 같은 사회적 갈등 없이 우리 세대가 발생시킨 고준위방폐물 관리부담을 후세대에 전가하지 않기 위한 기본 원칙, 부지선정 절차, 주민 의견수렴, 관리시설 유치지역 지원 등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어 정치나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여느 때와 달리 원자력계뿐 아니라 원전 주변 지역주민, 지자체, 미래세대 등 이해관계자와 국민 대다수가 회기 내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이유다.



주권자인 우리 국민은 헌법을 통해 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 권한과 의무를 국회에 부여했다. 특별법은 고준위방폐물로부터 우리 국민과 후손의 건강과 환경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률이다. 이번에도 못 한다면 우리 국민은 얼마나 또 참고 기다려야 하는가? 여·야 모두 제정 필요성과 취지에 공감했던 법안 발의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임기 내에 특별법 제정을 마무리할 것을 마지막으로 촉구한다. 21대 국회가 반세기 넘게 입법 不作爲(부작위)를 방치해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놓은 입법부로 또 기억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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