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푸에르토리코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4.01.29 14:41
글자크기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는 카리브해에 있는 인구 320만 명의 섬이다. 조디 포스터의 영화 '콘택트'(1997)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파망원경이 나오는데 이 망원경이 푸에르토리코에 있다. 그런데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나면 미국 시민이 되고 미국 여권을 받는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이른바 '속령'이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 외에 괌,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사이판이 있는 북마리아나제도, 미국령 사모아 등이 미합중국의 속령이다. 속령에는 모든 미국법이 적용된다.

푸에르토리코는 1580년부터 약 400년 동안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1898년에 미국-스페인 전쟁(4개월 걸렸다)의 결과로 쿠바, 필리핀, 괌과 함께 미국에 할양되었다. 미국은 푸에르토리코를 손에 넣고도 별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방치해 두었는데 바로 옆의 쿠바에 올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푸에르토리코가 경제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어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1917년부터 주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했는데 주민들은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필요한 징병자원을 늘리려고 한 조치라며 반발했다. 정치적인 자치는 1952년에 헌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었다. 산업개발을 위한 노력은 대체로 실패했고 지금은 사탕수수 재배지, 제약산업, 미국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서 입지를 가지는 정도다.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있었다. 2012년에 실시되었던 국민투표에서 현재의 지위에 반대하는 의견이 54%를 차지했고 그러면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투표에서는 61.16%가 '미국 정식 주 지위의 인정'이라고 답했다. 독립을 희망하는 국민은 5.49%에 그쳤다. 2020년 11월 총선과 함께 실시된 국민투표에서도 52%가 미국 정식 주로 즉시 편입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2017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46%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의회에 의원을 보낼 수 없고 하원에 의결권이 없는 대표 한 사람을 보낼 뿐이다. 대통령 선거에도 물론 참여할 수 없다. 미국 의회가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의 정식 주로 편입하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열악한 경제적 기반 때문이다. 자주 닥치는 대형 허리케인으로 입는 피해도 크다. 그러다 보니 많은 푸에르토리코인이 미국 본토로 이주해 섬의 인구가 줄고 있고 그 사실이 다시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문제는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주하는 곳이 가까운 플로리다라는 사실이다. 1821년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500만 달러에 넘겨받은 플로리다주는 미국 정치와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미국의 주별 인구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뉴욕 순이고 GDP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플로리다 순이다. 한반도의 약 80% 면적, 약 2000만 명 인구의 플로리다 경제규모는 멕시코, 인도네시아와 비슷하다.

플로리다는 각종 선거에서 이른바 경합주로 분류되어 왔는데 대통령과 주지사 선거가 1~2% 차이로 판가름 나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곳이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플로리다주 재검표로 부시가 고어를 물리친 사례가 유명하다. 이런 형편이니 미국에서는 대선이 있을 때마다 양측 후보들이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최근 플로리다의 공화당 강세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이제 100만 명이 넘는 민주당 지지 성향의 푸에르토리코인이 공화당 성향의 쿠바인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 전체의 정치에도 변화를 초래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