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철공소 내부는 '쿠르릉' 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이미 절단된 자재들이 수십개씩 깔려있었다. /사진=이승주 기자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30년 넘게 이곳에서 일했다는 제조업체 대표 이모씨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앞으로 2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문래동은 대부분이 소규모 사업장인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 다 죽는다"고 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사업장에는 3명이 근무한다. 이씨의 업체에서는 절단기로 스테인리스를 잘라 포스코 같은 철강업체에 제공한다. 철공소 내부에서는 '쿠르릉' 하는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철공소 바닥에는 이미 절단된 자재들이 수십개씩 깔려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거리. /사진=이승주 기자
이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중소기업계 등은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적용 유예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업주뿐 아니라 직원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문래동에서 링 부품 제작업체에 5년간 근무했다는 직원 박모씨는 "큰 회사는 사장이 잡혀가도 대체가 가능하지만 이런 작은 곳은 사장이 처벌받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며 "직원들 목숨도 다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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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비는 언감생심이다. 적용이 언제 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다수 철공소 업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보험 같은 걸 들어야 하느냐", "나만 몰랐느냐", "그런 걸 왜 만드는 거냐"며 되물었다. 그제야 핸드폰으로 급하게 검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내부 모습. /사진=이승주 기자
단독주택 등 소규모 건축물을 시공하는 50대 장모씨는 "업주가 100% 책임지는 건 독박을 쓰는 것과 같다"며 "큰 업체는 경제적 여력이 되니 직원도 잘 따르지만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는 인력도 부족하고 항상 '을'이다. 사업주, 현장관리자, 근로자가 함께 책임을 나눠야 부담도 덜하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정모씨도 "지금도 현장에 나온 안전관리자를 보면 건축공학과 나온 사람, 현장에서 반장 생활 10년 한 사람 등 보여주기식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며 "소규모 사업장은 결국 비용 부담 때문에 자격 없는 안전관리자를 대충 고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전문건설사 설문조사.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전문건설사는 대기업과 달리 대표이사가 기술자이자 실제 시공자인 경우가 많고 건설 현장이 생기면 그때그때 기간제 근무자를 채용해 관리하는 구조"라며 "만약 불의의 사고로 대표이사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그 업체는 그냥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합건설업체에서 도급받아 일을 진행하는 구조상 목적물 완공에만도 예산이 빠듯하다. 소규모 업체에서 안전관리자를 따로 채용할 여력이 안 된다"며 "또 관련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내용이 모호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고 법에서 말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 했다고 해도 나중에 가서 충분하지 않다고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외벽 청소 등 자칫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 관계자들도 고민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필요성에 공감은 하지만 법에서 정한 조치를 모두 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외벽 청소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스카이 작업이나 밧줄을 타고 작업하다 보면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이 많다"며 "먹고살기 바빠 안전관리자를 고용하진 못하겠지만 최대한 안전 장비를 챙겨주고 안전 수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