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당했대" 주가 와르르…기술유출 '쉬쉬' 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김도현 기자 2024.01.24 06:10
글자크기

[MT리포트] 구속피의자 0명, 처벌이 우스운 기술도둑⑤

편집자주 산업에 미치는 피해는 막대하지만 처벌은 미약하다. 기술유출 사범 얘기다. 지난해 경찰이 검찰에 넘긴 기술유출 사건 중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례는 0건이었다. 기소돼도 대부분 집행유예 판결이 떨어지거나 실형인 경우에도 많아야 징역3년이었다. 기술유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솜방망이' 처벌은 없어야 한다.

/사진 = 조수아 디자인기자/사진 = 조수아 디자인기자


"중국으로 기술이 넘어갔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가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아세요?"

비밀이 새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국내 첨단 산업을 휩쓸고 있는 중국향(向) 기술유출에도 신고를 꺼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6년간 수십조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알려진 유출사례는 여전히 적다. 기업들은 주가 하락과 추가 유출 피해, 신고 후 불이익을 우려해 섣불리 공개하기를 꺼린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영업 비밀을 지키겠다는 기업도 나온다.

23일 머니투데이가 국내 주요 기업 8곳에 기술 유출 시 사후대처를 질의한 결과 이 중 6곳이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수사 과정의 2차 유출'과 '주가 하락', '대외 이미지 훼손' 등을 꼽았다. 특히 2차 유출은 기업의 최대 걱정사항 중 하나다. 수사 인력이 비밀이 가득한 팹(생산 설비) 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수도권의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신고하려면 유출된 기술·인력을 상세히 보고해야 하는데, 이것도 다른 형태의 기술 유출"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중국향 초전도체 기술 유출 의혹을 받는 A기업이나,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에 연관된 것으로 결론지어진 B기업은 소식이 알려진 이후 주가가 5~10%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에게 내부 단속을 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줘서다. 기술 유출 피해보다 주가 하락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경우 내부에 '함구령'이 내려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신고를 하더라도 '기술 유출이 발생한 기업'으로 낙인이 찍힌다. 유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 뒤늦게 이를 인지한 행정 기관이 기업에 질책을 가하는 사례도 많아 기업의 불만이 크다. 한 기업 관계자는 "피해를 본 기업을 위해 유관부서가 나서 다퉈 주지 않고,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프로젝트에 교묘하게 배제하는 방식으로 벌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러는 사이 기술유출은 계속 느는 추세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발생한 해외 기술유출 범죄는 96건이다. 피해 규모는 25조원에 이른다. 수사당국은 적발 건수보다 피해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내다본다. 경찰 관계자는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첩보를 수집해 수사하다가 기술 유출이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업계는 유출 방지책을 다시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술을 빼가는 방식이 점차 진화하면서 2차, 3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재발 방지가 필수적이지만, 기업과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미국은 기술 유출을 간첩죄로 규정하고 1급 기밀로 다루며, 민사사건도 연방 법원에 제소할 수 있게 '투트랙 처벌' 제도를 채택했다. 일본은 유출 조사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술 유출 수사에서는 기업의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해 줘야 한다"며 "기업들은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전문 수사팀을 꾸리든지, 기업과 긴밀히 공조하는 등 2차 피해를 막는 데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