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요 부품 글로벌 공급 측면에서 보면 혁신성 미국보다 앞서"

머니투데이 김상희 기자 2024.01.21 06:00
글자크기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터뷰 - 울리케 섀이드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일본 경영학 교수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울리케 섀이드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일본 경영학 교수/사진제공=울리케 섀이드 교수울리케 섀이드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일본 경영학 교수/사진제공=울리케 섀이드 교수


고속철도, 플래시 메모리,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 휴대용 음악 재생 기기 등을 최초로 개발하거나 상용화에 성공한 일본은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 혁신을 이야기할 때 일본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디지털·모바일 시대에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에서는 수많은 혁신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했지만, 일본은 이들에 이은 세계 3위 경제 대국임에도 여전히 연필로 투표를 하고, 디지털 결제 수단보다 현금을 선호하는 등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원천기술과 소재, 부품, 장비 산업 등에 있어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는 일본 혁신 생태계 전문가인 울리케 섀이드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UC 센디에이고) 일본 경영학 교수 겸 일본 혁신기술포럼 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 혁신 생태계의 강점과 취약점을 살펴보고, 우리나라 혁신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을 짚어봤다.

- 일본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지만 디지털·모바일 시대 들어서는 혁신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일본의 혁신성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의 혁신성이 뒤처진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혁신을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나의 방법으로 투입 시장과 제품 시장을 살펴보고 가장 중요한 부품이 어디서 공급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세계 1위다. 일본은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매우 중요한 소재와 부품을 만들어 글로벌 공급망에 공급한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미국이 뒤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혁신이라고 하면 미국 실리콘밸리와 스타트업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하나의 측면일 뿐이다. 심지어 유명한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이제 모두 업력이 20년이 넘었다. 건강한 경제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혁신이 혼합돼 있다. 일본에서는 대기업의 혁신이 오랫동안 강조돼 왔기 때문에 다른 혁신을 따라잡는 데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이제 더 빠르고 가장 획기적인 혁신이 필요한 새로운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스타트업에 유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은 대기업이 많기 때문에 혁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일본 혁신 생태계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 혁신 생태계에는 스타트업, 엔젤 및 VC(벤처캐피털), 규제 기관, 대기업, 변호사와 회계사 등의 지원 기관들이 포함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 모든 것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클러스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부분들이 성장해 왔고, 여전히 몇 가지 약점이 있지만 이런 구성 요소들을 이제 모두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의 과제는 정책과 사회다. 사회 측면에서 일본은 여전히 창업보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한다. 고용안정과 안정적인 수입을 우선시하고, 젊은 인재들이 대기업으로 많이 간다. 대기업의 가파른 계층 구조와 관료주의로 인해 인재의 혁신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본은 원천기술, 소재, 부품, 장비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은 혁신 생태계와 스타트업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스타트업 성장에 반드시 기술을 우선시할 필요는 없다. 이 부분은 '쉘로우 테크(Shallow Tech, 기술보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기존 기술 개선 등을 통한 서비스와 제품)'와 '딥 테크(Deep Tech, 심도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혁신과 서비스)'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기술을 덜 중요하게 생각한 제품과 서비스가 좋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점진적인 혁신을 통해 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틱톡이 대표적인 예로, 얕은 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파괴적인 기술이 되기도 한다. 우버도 거대한 소프트웨어 플레이어가 되고 있다. 얕은 기술은 시장 출시 속도가 더 빠르며 더 짧은 기간에 더 많은 ROI(투자수익률)를 생성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고령화, 출산율 감소 등 인구 문제를 겪고 있다. 인구 구조 속에서도 계속해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구구조 변화는 큰 위협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새로운 DX(디지털 전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줄어드는 인구를 대신해 구인난을 해결하는 기술 등이다.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혁신기업은 언어의 한계 등으로 글로벌화보다는 내수 시장에 초점을 맞춘 사업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화를 위해 정부, 기업 등 혁신 생태계 이해관계자들의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많은 일본 스타트업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시장은 여전히 1억 2000만 명에 달하는 매우 큰 시장이다. 해당 시장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글로벌화는 큰 도전으로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익이 비용보다 클 경우에만 글로벌 시장을 봐야 한다.

많은 일본 스타트업의 경우 게임과 같은 얕은 기술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많아 글로벌화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생명공학, AI(인공지능)와 같은 딥테크 분야에서는 일본도 많은 스타트업이 글로벌로 진출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