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대표인 A씨는 최근 이민을 결심했다. 자녀들에게 가업을 넘겨줄 방법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자녀들이 물려 받은 지분을 팔지 않고서는 상속세를 낼 수 없다. 그러니 아예 회사를 팔고 상속세가 없는 나라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징벌적 상속세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가 블록딜(대량매매)로 삼성전자 지분(약 0.5%에 해당하는 2982만9183주)을 매각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별세 이후 세 모녀가 내야 할 상속세는 총 9조원에 달한다. 재계는 이들이 주식담보대출과 배당 만으로는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삼성전자 지분까지 팔게 된 것으로 본다.
'연예인' 걱정, '재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지만, 상속세제를 들여다보면 숨이 막힌다. 기업 지분을 100% 보유한 창업 1세가 2세에게 기업을 승계하면 2세의 지분은 40%만 남게 되고, 3세까지 승계하면 지분율은 16%로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과연 정상적 방법으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을까.
'부의 대물림'에 따른 불평등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과중한 세금을 통한 조정은 '부의 이탈'만을 부를 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미래학자인 후안 엔리케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무엇이 옳은가'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나중에 잘 살게 될 것이고 △자녀와 손자 손녀가 자신보다 더 여유롭게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 부를 쌓아도 이를 후대에 전해줄 방법이 없다면, 과연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에 나서려 할까.
글로벌 전략컨설팅기업 맥킨지도 최근 한국의 미래성장 전략을 다룬 보고서에서 "기업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상속세 개편 등 제도적 유인책을 고려해 보라"고 제언했다. OECD 38개국 중 19개국은 이미 상속세가 존재하지 않으며, 상속세가 높은 나라들은 한국보다 다양한 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실질적인 기업 경영 관점에서 볼 때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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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국가 경쟁의 시대를 맞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상속세 문제를 바라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