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열의 Echo]'의대' vs '슈퍼을', 한국의 미래는 어디에

머니투데이 송정열 디지털뉴스부장 겸 콘텐츠총괄 2023.12.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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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들이 지난해 의대 갔잖아."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성적표가 배포된 지난주 연말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대단하네"라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요즘 자식농사의 최고봉은 의대에 입학한 아들과 딸이다. 생면부지의 부모 지인들 모임에서도 화제에 오를 정도다. 그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이뤄낸 성과인데 왜 안 그렇겠나.

올해 수능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수험생들도 어김없이 의대행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년 없이 평생 돈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입까지 높은 의사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국가로서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더구나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인적자원 활용 측면에서는 최악이나 다름없다. 자연계 우수인재들은 1970년대엔 토목공학, 80년대엔 전자공학, 90년대엔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 이들이 건설·전자·IT(정보기술)산업의 발전을 이끌며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국 도약을 주도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의대가 우수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수인재의 이공계 외면은 기업과 산업을 넘어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대쏠림 현상이 국가적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인 이유다.



#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으로 요동치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나 파운드리(반도체 설계) 1위 대만 TSMC가 아니다. 주인공은 이른바 '슈퍼을'로 불리는 네덜란드 ASML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네덜란드 국빈방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과 함께 찾는 바로 그 기업이다.

ASML은 실리콘웨이퍼에 집적회로를 프린팅하는 노광장비를 만든다. 세계 노광장비 시장의 91%를 점유했다. 주력 제품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의 1대 가격은 약 3000억원에 달한다. 보통 반도체라인 하나에 10대 이상의 노광장비가 들어가는데 연간 생산량이 50대 수준이다. 고객이 돈을 싸들고 찾아가도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 ASML이 '슈퍼을'을 넘어 '초슈퍼울트라을' 대접을 받는 이유다.

# 더 주목할 것은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다. 우리에겐 '풍차'와 '튤립'으로 잘 알려졌지만 사실 강력한 제조업 기술력을 자랑하는 전통의 강소국이다. 면적과 인구는 우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6만1769달러에 달한다. 네덜란드는 1700개에 달하는 소재 연구·개발기업을 보유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실리콘 칩의 90%에 네덜란드산 부품이 탑재된다.


이공계 기술력의 힘이다. 우수인재가 포진한 델프트공대, 레이던대학, 흐로닝언대학 등을 중심으로 전국에 산학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강력한 연구·개발정책을 통해 기술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쇼크에도 우리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화율은 지난해 말 기준 아직도 30%대에 머무른다. 반도체산업의 뿌리를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네덜란드를 철저히 벤치마킹해야 한다.

#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패권을 장악하더라도 변치 않고 대접받는 것은 기술, 기술경쟁력이다. 미중갈등 속에 오히려 ASML 같은 기업의 몸값이 치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 하나가 1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100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 우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더불어 ASML 같은 세계적 소부장 기업들까지 보유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우수인재가 이공계로 몰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의사연봉을 웃도는 파격적인 보상 등 특단의 대책들이 나와야 한다. 최고의 인재들이 죄다 의사가운을 입고 있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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