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졸업한 고교 이름이 최근 신문과 방송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야구 명문으로 거듭나면서다. 사실 재학 당시에는 그리 강팀이 아니었다. 2학년 때 무려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대회인 대통령배 야구대회 4강에 진출, 학교가 떠들썩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J고교처럼 신입생 부족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 남녀공학 전환을 선택한 서울시내 학교는 모두 5곳이다. 저출산에 따른 학생수 감소의 충격이 산간벽지나 지방만이 아니라 서울시내 한복판까지 뒤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 "솔직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제대로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 요즘 젊은 세대의 결혼과 육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한 후배가 한 말이다. 한마디로 지금 현실에서 '출산은 미친 짓'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한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0.78명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결혼을 앞둔 월급쟁이가 아무리 근검절약하며 저축했어도 혼자 힘으로 서울에 매매든 전세든 신혼집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변의 사례들을 보면 사실 불가능하다.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의정부, 수원 등에 전셋집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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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결혼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출금 갚느라 허리가 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한 달에 수십, 수백만 원의 사교육비를 감당하며 어떻게 아이를 키우느냐는 아우성이 쏟아진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해외 유수 언론에서도 주목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한국 정부가 공격적으로 보조금, 현금지급, 저금리 대출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출산율은 하락 추세를 보인다"며 "한국 정부가 결혼과 출산을 위해 2006년 이후 약 280조원을 쏟아부었다"고 지적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일과 삶의 균형, 집값안정, 경쟁완화 등을 통해 출산이 불행이 아닌 행복이 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출산 후 독박육아의 부담을 덜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구축이 시급하다. 정부, 기업, 가정 등 모든 사회 주체가 발 벗고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출산율 제고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출산에 사라지는 건 학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지금 사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