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신과 시간의 방' 농식품 공공 바이오파운드리

머니투데이 권재한 농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 2023.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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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한 농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권재한 농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


만화 드래곤볼에서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장소가 있다. 이곳에서의 1년은 밖의 시간으로 하루에 해당하고, 중력은 지구의 10배, 공기는 지구의 4분의 1밖에 없는 수련을 위한 극한의 장소이다. 주인공 '손오공'은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적을 만났을 때, 이 장소에서 수련을 통해 전투력을 상승시킨다.

현실에서 우리도 시간이 부족하거나 빠른 일 처리가 요구될 때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특히, 이번 주에 수능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이나 정해진 기한까지 기고를 작성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간절히 생각날 것이다. 농업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그린바이오 산업도 '정신과 시간의 방'이 생각나는 상황이다.



그린바이오 산업은 농·축산물, 미생물, 천연물, 관련 유전체 등 농생명 자원에 생명공학기술 등을 적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新)산업이다. 그린바이오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국내 시장 규모는 세계시장의 0.3%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산업에 대한 체계적 육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농식품 분야 공공 바이오파운드리(Biofoundry)를 주목하고 있다. 바이오파운드리란 로봇·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적용하여 바이오 분야 설계(Design), 제작(Build), 시험(Test), 학습(Learn) 전 과정을 자동화, 고속화하는 기반 시설을 의미한다. 농식품 분야에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린바이오 분야의 소재 개발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소재 개발을 위해서는 수만 가지 이상 시료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람은 하루에 최대 400개까지 시료를 분리할 수 있지만 바이오파운드리에 구축된 자동화 기기는 5,000개 이상도 분리할 수 있다. 균주를 발굴하여 기능을 분석하는데 소용되는 시간이 기존 1달에서 3일까지 줄어드는 것이다. 기존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새로운 제조공정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인적 오류(Human Error)를 최소화할 수 있다. 복잡한 유전체나 미생물을 다루는 그린바이오 산업 특성상 아무리 미세한 오차라도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최적화된 자동화 체계를 통해 오차를 최대한 줄여 제품개발 과정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데이터 기반 생산으로의 전환이 촉진된다. 바이오파운드리에서는 설계부터 학습까지 전 과정에서 얻어진 모든 자료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다. 이 정보는 유사한 공정 개발 과정이나 AI 학습용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새로운 핵심기술 개발의 기반이 된다. 특히,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러한 정보를 다양한 형태로 산업 전반에 제공할 수 있다.


'정신과 시간의 방'이 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내부에서 뼈를 깎는 수련이 있었기 때문에 더 강한 적을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농식품 분야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도 단순히 첨단시설을 확보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린바이오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첨단시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내년도 신규 사업을 통해 농식품 분야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할 예정이다. 아직 공공 분야의 바이오파운드리는 걸음마 단계이다. 하지만 첫걸음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파운드리 기반으로 성장했듯이, 그린바이오 산업도 바이오파운드리를 통해 더욱 도약할 수 있다. 농식품 분야 공공 바이오파운드리가 '정신과 시간의 방'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든든히 지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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