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 글쟁이㈜ 대표
이 사전은 “의인법은 고대의 활물론 및 범신적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활용 장르와 관련해 “이러한 이유로 특히 신화·전설·민담·우화·동화 등에 많이 나타난다”고 전한다. 우리 고전 문학 중 의인법이 구사된 글 중 통일신라 시대 설총이 쓴 〈화왕계〉가 있다. 그중 두 문단을 살펴보자.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神)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중략)오호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중략)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조침문 [弔針文] (외국인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 2010. 1. 29., 배규범, 주옥파)의인법은 낡은 수사법이 아니다
울릉도 동쪽 섬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도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중략) 멀리 조국(祖國)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懇切)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출처: 유치환, 울릉도둘째 조언은 의인법을 구사할 때에는 가장 적극적인 ‘일인칭 의인법’도 적극 고려하라는 것이다. 의인법에는 삼인칭 의인법과 이인칭 의인법, 일인칭 의인법이 있다. 이는 필자가 정리한 개념이다. 필자가 사장교와 현수교에 구사한 의인법이 삼인칭 서술이라면, 〈조침문〉을 쓴 유씨 부인과 청마 유치환 시인은 이인칭 의인법을 썼다. 일인칭 의인법은 대상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다음은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중 ‘빨강’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전략) 나는 어디에나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나 있다. 투르가 동생 이레치의 목을 야만적으로 내리쳤을 때, 꿈 같은 장관을 이룬 전설적인 군대가 초원에서 전투를 벌일 때, 일사병에 걸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름다운 코에서 반짝이는 피가 흘러내릴 때, 나는 거기 있었다. (중략)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략)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출처: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1, 민음사, 2016, 331~333쪽서술 대상인 사물로 하여금 발언하도록 하는 일인칭 의인법은 읽는 재미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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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카스텔9000’이다. 난 사상 최초의 기록자라 불리는 연필이다. 고향은 깊은 잠을 자는 흑연 광산과 향기로운 삼나무 숲이다.다이아몬드의 사촌인 탄소를 가슴에 항상 품고 다닌다. 난 사람들의 두뇌가 움직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는 세계 시민이다. 사람들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친숙한 필기구라고도 생각한다. 출처: 손용석, 내이름은 카스텔9000, 포브스코리아, 2007년 3월호(48호)
당신은 리더로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승용차와 대중교통도 많이 이용하지만, 발품도 누구보다 많이 판다. 그렇다면 당신의 구두나 운동화가 말하는 일인칭 의인법을 수사법으로 택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OOO의 구두다. 2023년 10월 25일 현재 7년 하고도 딱 하루 동안 OOO과 함께했다. ‘구두를 그렇게 오래 신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묻는 분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사실이다. 그는 나를 오랫동안 보살피며 신고 다녔다”로 시작하는 것이다.
일인칭 의인법의 주인공 후보는 많다. 만년필을 택할 수도 있고, 컴퓨터로 정할 수도 있다. 당신의 특징과 습관과 활동을 잘 나타내는 사물이라면 무엇이라도 가능하다. 의인법은 낡은 수사법이 아니다. 대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표현 방법이다. 특히 사물로 하여금 발언하게 하는 의인법이 글을 더욱 생동하게 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